백년의유산, 분노의 국수는 언제 말 것인가
민채원(유진)은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을 수 있을까.
지난 주 방송된 주말드라마 ‘백년의 유산’ 5회와 6회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여주인공 민채원의 잃어버린 기억찾기와 시어머니 방영자(박원숙)의 기억조작, 그리고 황당하게 개입할 수밖에 없었던 이세윤(이정진)의 추리가 주요내용으로 다뤄졌다.
민채원은 이세윤(이정진)으로부터, 그녀가 정신병원에 감금됐었다는 사실을 듣고 혼란에 빠졌다. 이에 채원은 사실 확인을 위해 해당 정신병원에 문의를 하지만, 아들 김철규(최원영)와 이혼시키기 위해 멀쩡했던 며느리 채원을 강제로 정신병원에 감금시켰던 방영자가 미리 손을 써놓은 터라, 이렇다 할 결과를 얻지 못한다.
영자는 한술 더 떠, 채원과 세윤이 함께 있었던 사진을 앞세워, 두 사람이 밀회를 즐겼던 불륜관계였다고 거짓말을 했다. 영자의 몹쓸 연기는 채원을 바람피는 며느리로 둔갑시켰고, 기억상실증에 걸려 그 얘길 믿을 수밖에 없었던 채원은 충격과 죄책감으로 오열했다. 그리고 채원은 자신을 구해 준 세윤을 찾아가 물세례를 퍼붓고, 우리가 불륜관계란 걸 왜 속였냐고 오해하며, 생쇼아닌 생쇼를 했다. 참다못한 세윤은 채원에게 “정신차려!”라고 버럭하며 발끈했다.
여주인공 민채원은 계속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세윤을 만나면 그의 말을 통해 영자를 의심하게 되고, 영자의 얘기를 들으면 불륜녀인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 모든 원인은 ‘기억상실증’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여주인공 민채원을 바라보는 시청자는 답답할 수밖에 없다. 도대체 민채원은 언제 기억을 찾을 것인가. 더 나아가 국수드라마에서 ‘국수는 언제 말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드라마 백년의유산은 ‘옛날국수’라는 서울 변두리 오래된 노포를 배경으로, 삼대째 국수공장을 운영해 온 국숫집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백년의유산은 국수를 소재로 한 드라마다. 그런데 극이 6회가 진행된 현재까지 드라마가 말고 있는 건 무엇인가. ‘국수’가 아니라 ‘기억’을 말고, 막장으로 치닫는 착한 며느리를 향한 악독한 시어머니의 횡포를 고명으로 얹고 있다.
사실 국수드라마라고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국수초보인 민채원-이세윤이 열심히 공들여 국수를 말아 국수의 신 엄팽달(신구)에게 대령하면, 엄팽달은 시식하기도 전에 곁눈질로 스윽 훑고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국수는 마음으로 삶는 거야... 다시 삶아!”라며, 국수 면발엔 영혼, 육수엔 바다를 운운하며 고수의 특권인 역정부터 내는 코스다. 이후 주인공은 재료부터 시작해 국수와 관련된 숨은 고수들을 만나서 배우거나 승부를 겨루며 성장하는 과정. 즉 허영만의 ‘식객’같은 드라마.
그런데 백년의유산은 ‘식객’같은 드라마가 아니었다. 오히려 ‘오작교형제들’같은 드라마에 가깝다. 오작교농장의 형제들을 중심으로 파생된 가족이야기, 연애와 결혼이야기, 그 안에서 이뤄지는 갈등과 화해에 초점을 맞추고 정성을 쏟는 드라마. 그저 농장은 거들뿐. 즉 백년의유산은 ‘국수’가 중심이 아닌 국수집‘사람들’이 중심인 드라마를 그리고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때문에 백년의 유산에서, 주인공인 민채원-이세윤 커플이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국수를 말지 알 수가 없다. 일단 잃어버린 민채원의 기억이 돌아와야 ‘분노’의 잔치국수를 말든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옛사랑 은설(황선희)을 추억하며 건조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이세윤도, 이혼녀가 될 채원을 돕는 것과 별개로, 국수를 말아야 할 명분이 필요하다. 때문에 미각을 잃은 세윤이, 우연찮게 체원의 조부 엄팽달의 착한식당에 들려 국수를 먹고 맛을 느끼고 잃어버린 절대미각을 회복하는 전개도 예상해 볼 수 있다. 즉 국수를 통한 진도가 나가기 위해선, 역시나 민채원의 기억상실증이 해결되어야 한다.
아무리 드라마 백년의유산이 국수집 ‘사람들’의 이야기가 중심이라고 해도, 소재가 국수인 만큼, 시청자는 구심점이 될 수 있는 ‘국수’를 통해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관계도, 인생도 자연스레 녹아들 수 있는 에피소드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국수를 조금이라도 어필하며 반전을 꾀할 시점이다. 여주인공의 기억상실증으로 지지부진해진 전개가, 잘 구축된, 정보석-전인화 등 개성이 넘치는 주변캐릭터들까지 식상한 흐름에 매몰시킬 수 있고 시청자는 멀어질 수 있다.
다행히 20일 방송된 백년의유산 6회 마지막에, 술에 취한 남편 철규가 던진 술잔 덕에, 채원은 잃어버린 기억 일부를 떠올렸다. 7회에선 민채원의 기억이 어느 정도 회복될까. 채원이 기억을 온전히 회복하면 좋고, 한꺼번에 모두 돌아오지 않아도 좋다. 대신 시어머니의 영자의 수작대로 철규와 이혼하는 코스는 가급적 빠를수록 좋다. 그래야 채원이 국수공장으로 돌아와 시댁을 향한 '분노의' 국수를 말 수 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