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연예

흥행퀸 하지원, 무릎팍도사로 삼류영화 찍다

바람을가르다 2009. 9. 24. 04:11

연기 하나만큼은 국내 최고의 여배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하지원이 <무릎팍도사>를 통해, 정말 오랜만에 예능프로그램에 나들이를 했다. 여타 톱스타 여배우들이 그러하듯이, 예능프로그램의 출연을 기피하며 신비주의를 고집하던 그녀가, 김명민과 주연을 맡은 영화 <내사랑 내곁에>의 개봉을 앞두고 <무릎팍도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비록 영화홍보가 목적이라 손치더라도 그녀를 안방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시청자로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방송내내 하지원의 언행은 생뚱맞다못해 오버센스의 극치를 연출하며 실망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오프닝은 나쁘지 않았다. 발랄하고 생기있는 모습으로 애교까지 작렬하며, 퀸의 이미지를 살짝 벗겨내고 프로그램에 의욕적으로 참여하려는 의지를 내비친다. 그녀의 고민은 배우로서 인생은 재밌는데, 인간 하지원(본명 전해림)으로서의 삶은 재미가 없다.”라는 톱스타로서 느낄 법한 현실적인 문제에서 접근한다. 고민의 진정성을 떠나 충분한 이야기거리로 채워질 수 있는 화두였다. 

 

문제는 거기에서 끝났다는 것이다. 충무로의 흥행보증수표에 흠집이라도 날까 외곽을 빙빙도는 형식적인 질문과 대답속에 그녀의 필모그래피로 방송분량의 2/3를 채워 넣고, 억지로 짜맞추듯 일상의 꼬리부분을 싹둑 잘라 대충 풀칠해서 붙여 넣는다. 결국 기존의 <무릎팍도사>는 사라지고, <박중훈쇼>로 전락한다.

출연작과 관련된 에피소드에선 당당하던 하지원이
, 사생활로 화두가 옮겨지자 급격하게 움츠려들며 자기방어에 집착한다. 마치 순백의 무결점 여배우를 말하고 싶은 픽션에 가까운 하지원표 모노드라마는, 시청자로 하여금 지루함을 불러 오게 만든다. 충무로의 흥행퀸이 전형적인 삼류영화를 찍는데, 무릎팍도사도 대책이 없다

정치인도 아니고
, ‘소주’, ‘동대문으로 서민적인 이미지를 심는 것도 생뚱맞았지만, 시간만 주어진다면 혼자서 여행을 가고 싶다는 게 소원이라는 그녀. 그 소원을 누가 막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진짜 그녀의 소원이라면, 족욕은 때려치고 비행기표부터 끊는 게 순리 아닐까
마지막에 흘린 그녀의 눈물에 진심을 찾긴 힘들었고, 베테랑 연기자 하지원이 방송을 여우같이 한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한다. 다만 시청자에게 여우라는 이미지가 각인될까 안쓰러울 뿐이다.

그녀에게 첫키스니, 첫사랑이니 따위의 과거사가 궁금한 것이 아니다. 78년 생이면 사랑도 해봤을 것이고, 나이트클럽에서 몸도 흔들 수 있으며, 삼겹살에 소주도 마실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몰라요식으로 구렁이 담 넣어 갈 필요가 있을까. 마치 남자는 극중에 상대배우들밖에 모르고 그들과의 키스담으로 방송분량을 꾸역꾸역 채워 넣으며, 동대문에 잠깐 들린 것이 고작 <무릎팍도사>에 나와 시청자에게 어필하고픈 인간 하지원이라면 섭섭하다. 

 

32살의 인생을 되돌아 볼 때, 당당하고 솔직하게 드러낼 에피소드가 없다면, 정말 그녀가 재미없는 인생을 살아온 것이 맞다. 그러나 <무릎팍도사>를 통해 천만관객을 돌파한 블록버스터 <해운대>급은 안 되도, 소소한 재미를 주던 <1번가의 기적>같은 인간 하지원의 스토리를 기대했던 시청자에게 이도저도 아닌, 그녀의 삼류연기를 지켜보는 듯한 기분은 뭘까.

그동안 <무릎팍도사>를 지켜보면서 강호동이 오버하는 것은 자주 보지만, 이번처럼 억지스럽게 리액션을 했던 적은 드물다. 어떻게든 분위기를 살리고자 노력하지만 에러를 낳을 뿐이다. 얼마나 할 얘기가 없으면 삼류 아이템인 러브라인을 급설정해 방송으로 내보냈겠는가. 올밴과 하지원을 엮어 코미디를 써보지만 악수가 되고 만다.  

 

제작진과의 사전조사 및 인터뷰를 통해 질문의 가이드라인이 정해진다는 점에서, 강호동보다 하지원에 대한 실망감이 더 클 수 밖에 없다. <무릎팍도사>의 제작진들도 이에 부응하듯 별다른 포장없이 그녀를 시청자에게 던져 놓는다자충수는 놓지 않는 제작진이 그나마 개념으로 보였을 정도였다.

 

예상대로 무릎팍도사 '하지원' 편에서는 특별한 반전따윈 없었다. 다만 2009년 현재 최고의 흥행퀸으로 손꼽히는 그녀가, 쌍팔년도 이미지관리를 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면서도 그녀도 별 수 없는 대한민국 여배우라는 점에서 씁쓸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