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및 드라마

백년의유산 유진, '설마'를 '현실'로 만든 장면?

바람을가르다 2013. 1. 7. 14:36

 

 

 

시어머니에 의해 강제로 정신병원에 감금된 며느리의 울부짖음.

“3년간 피를 말렸으면 됐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6일 방송된 ‘메이퀸’후속 MBC주말드라마 ‘백년의 유산’ 2회는, 멀쩡한 며느리 민채원(유진)을 정신병자로 둔갑시킨 시어머니 방영자(박원숙)의 회심의 미소. 이 사실을 알고도 침묵하는 채원의 남편 마마보이 김철규(최원영)에서 시작한다. 과연 이들 사이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민채원은 시어머니 방영자의 지속적인 멸시와 폭행, 남편의 잦은 외도를 이기지 못하고 이혼을 요구했다. 이에 영자는 며느리 채원이 제시한 이혼사유가 장차 주식회사 ‘금룡푸드’의 오너가 될 아들에게 피해를 줄 지 모른다는 생각에 음모를 꾸민 것이다. 며느리를 정신병원에 가둠과 동시에 모든 이혼의 책임을 며느리에게 떠넘기려는 수작질이었다.

 

 

 

이 과정에서 드라마 ‘백년의 유산’은 선악의 대비가 뚜렷해지고, 위기에 빠진 여주인공 민채원은 목적을 부여받는다. 시어머니 방영자-마마보이 전남편 김철규로 대표되는 ‘금룡푸드’에 맞서, 서울 변두리에서 3대째 국수공장을 운영하는 국수의 달인 엄팽달(신구)-김끝순(정혜선)부부의 손녀 민채원이 국수를 앞세워 복수혈전을 준비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여기에 부잣집 외동아들 이세윤(이정진)이 가세해 채원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사랑도 키워갈 예정이다.

 

이세윤은 화려한 스펙을 갖춘 완벽남에 가깝지만 옛사랑(황선희)에 대한 상처가 있고, 공교롭게도 3년 전 사고로 미각을 잃은 치명적인 약점도 지녔다. 그래서 민채원-이세윤 커플은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고 의지할 수 있는 커플이며, 함께 할 때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조합이 된다. 때문에 ‘백년의유산’ 2회에서 우연처럼 만난 그들은 운명적으로 엮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강제로 정신병원에 감금시키는 ‘백년의 유산’의 초반 설정은 막장스럽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제작진입장에선 2회만에 주인공에게 권선징악에 합당한 목적을 부여하고, 주요 등장인물간에 선악의 대비를 극대화하여, 시청의 포커스를 단순하게 만들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기획의도가 국숫집사람들의 이야기고, 불량가족의 가족애 육성프로젝트를 내세우는 평이한 드라마의 밑그림이라면 더욱 말이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설마’를 ‘현실’로 만든 장면이다. 바로 정신병원에서 탈출을 시도하던 민채원이, 병원직원에게 쫓기다가 넘어져 박힌 돌에 머리를 부딪혀 기억상실증에 걸린 장면이 그렇다. 하필 돌에 이마를 찍혔다. 많은 시청자들은 예감했을 것이다. ‘설마 민채원(유진)이 기억상실증에 걸리는 거 아냐?’ 웬 걸. 쓰러져 정신을 잃은 민채원이 병실에 깨자마자 낯선 남자 이세윤을 보고 하는 말이, “여보?”

 

 

 

역시나 기억상실증이다. 시청자의 불길한(?) 예감이 적중하는 순간이다. 채원은 세윤에게 여보라고 말하고, 세윤은 내가 왜 당신 여보냐며 부정한다. 지켜보던 엑스트라 간호사는 ‘니들은 부부에요.’라며 상황을 종료시킨다. 생각해 보면, 돌에 부딪혀서 기억상실증에 걸린 민채원보다, 둘을 잘 알지도 못하는 간호사가 아는 척 끼어들어 당신들은 부부라며 오지랖을 떠는 게 더 짜증스러울 정도.

 

부분적이든, 일시적이든 민채원은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굳이 여주인공을 기억상실증에 걸리게 만들어야 했을까. 민채원이 기억상실증에 걸려야 할 이유가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내용전개에 무리가 없었다. 서로를 잘 모르는 민채원과 이세윤을 엮기 위한 일환으로 ‘기억상실증’ 코드를 삽입했다면, 지나치게 상투적일 뿐 아니라 제작진의 한계만 노출시킨 꼴이 된다. 남녀주인공 엮을 방법이 그렇게 없나?

 

 

 

드라마 ‘백년의 유산’이 시청자의 눈에 익은 캐릭터와 구도를 잡아, 눈길을 강하게 사로잡아야 할 극 초반 재미나 긴장감의 맛을 살리는 데에 다소 약하다는 판단이 들었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나친 조미료성 설정은 오히려 재미의 질을 파괴하고 시청자의 기대치를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때문에 ‘설마’에서 끝났으면 좋았을 여주인공의 뻔한 기억상실증은 아쉽다. 차라리 채원이 기억상실증에 걸린 척한 연기였다면 나쁘진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