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자격 김국진, 불편했던 정치보복
‘만약 나에게 권력이 주어진다면?’ 16일 방송된 해피선데이 ‘남자의자격’에서는 ‘남자, 그리고 절대권력’이란 소재로 리더가 되기 위한 멤버들의 욕심과 이를 둘러싼 권력다툼이 벌어졌다. 나이순으로 리더를 뽑는다면, 기존의 리더이자 맏형 이경규의 몫이 되겠지만, 이 날 만큼은 나이의 구별없이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민주적 절차인 투표를 통해 리더를 새로 뽑았다.
그 결과 남격의 2인자 김국진이 총 3표를 받아, 새로운 리더로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때문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김국진은 서열을 재정비하는 차원에서, 김준호와 주상욱을 최측근에 놓고, 그동안 각을 세웠던 이경규를 서열상 막내로 강등시켰다. 동시에 비록 정권교체에 앞장섰으나, 평소 이경규의 수족노릇에 최선을 다했던 이윤석-윤형빈을 토사구팽하고, 김준호의 말처럼 오히려 이경규를 끝까지 지지했던 김태원에겐 따뜻한 방안에서 편히 쉴 수 기회를 제공하는 특혜를 부여했다.
김국진의 코드에 맞춘 인사단행은 자존심 강한 맏형 이경규는 물론, 이윤석-윤형빈에게 강한 불만을 초래한 계기가 되고, 보다 강한 개혁과 권력남용을 주문한 김준호-주상욱에게도 불신을 제공하고 말았다. 결국 제공된 리더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며, 교체가 가능하고, 재집권은 불가하다는 정희섭PD의 설명과 함께, 리더 김국진은 권불십년이 아닌 권불 두시간만에 정권심판론에 직면했다.
‘남자의 자격-남자, 그리고 절대권력 1탄’의 전체적인 과정을 돌아보면, ‘쥐’ 이경규-‘토끼’ 김준호 등 띠로 이름을 새로 지은 것에서부터 조지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을 연상시켰고, 리더가 이경규에서 김국진으로 교체되는 과정에서 그들의 캐릭터나 관계도를 그대로 반영해 정치풍자가 진하게 묻어났다. 독한 이경규에서 순한 김국진으로 정권교체가 단행됐으나, 지배자와 피지배자사이에서 불거질 수 있는 불편함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머지 주상욱-김준호-김태원-윤형빈-이윤석 중에 새로운 리더가 선출된다면, 남격 민초들의 불만은 줄어들고 생활은 나아질까. 그다지 기대가 되지 않는다. 권력의 속성때문이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남격의 리더로서 타성에 젖은 이경규를 제대로 컨트롤할 멤버가 보이지 않는다. 멤버들이 이경규를 다루길 조심스러워 할 뿐 아니라, 이경규 본인조차 바뀐 룰에 온전히 순응하지 못하고, 중간 중간 정색과 거부감을 여과없이 표출하기 때문이다.
이 날 방송이 재미의 한계를 보였던 이유도, 존경하는 리더님이 된 김국진이 이경규를 강하게 휘어잡지 못하고, 이경규 또한 본인의 포지션을 때때로 망각한 채, 김국진이 쉬고 있는 방안에 낙엽 등을 던지는 반기를 드는 대목에서 알 수 있다. 그것은 이경규가 민주적 절차로 뽑힌 김국진을 리더로서 인정하지 않음을 드러내는 행위였다. 어떻게 보면 이경규가 김국진에게 강한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를 준 것이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응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측근 김준호-주상욱의 불만도 폭주했다.
이럴 거면 투표는 왜 하고, 새로운 리더는 왜 뽑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라진 게 없다. 정적이다. 역동성이 떨어진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뽑으면 뭐 하나. 민심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지역감정, 진영논리에 빠져 상대를 대화와 타협의 파트너로 대하지 않는 것. 여야가 매번 싸움질을 하고 국민 편가르기 앞장서며 반대급부로 기득권을 챙기는 정치구태.
때문에 예능 ‘남자의자격’은 현실정치를 어쩌면 적나라하게 풍자를 한 셈이지만, 냉정하게 말해 재미는 떨어졌다. 예능에서도 저 꼴을 봐야 하나. 과정에서 예능답게 순간순간 현실정치와 다른, 일침을 가할 수 있는 통쾌한 뭐라도 나와줘야 할 텐데, 라면을 사오거나 골프공을 줍는 등의 평이함속에 시간이 더해질수록 지루함의 연속이었다. 그것을 권력남용으로 빗대기엔 다소 약했고, 주어진 포지션에서 멤버들의 재치나 기발함을 발견할 수도 없었다. 입으로만 피바람 논하며 개혁과 변화를 얘기할 뿐, 기존에 품은 남격의 틀, 멤버들의 관계도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시간만 축내고 있었다.
더 재미없게 만든 건 정PD의 지나친 개입이다. 김국진에게 물바가지를 퍼붓는 멤버가 새로운 리더가 될 수 있다는 식의 조건을 부여한 것이다. 과거 정권인 김국진에게 물세례를 하든, 라면을 못먹게 하든, 멘트를 못하게 하든, 그것은 새롭게 뽑힐 리더가 공약하고 추진할 범위와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인데, 남격멤버가 아닌 선관위에게 가까운 정PD가 공약을 제시하듯 지나친 개입으로 멤버들을 수동적인 포지션에 가두고 만다.
뿐만 아니라, 피디가 줏대가 없었다. 가장 먼저 김국진에게 물을 뿌리는 멤버에게 새로운 리더로 임명하겠다는 제안을 했다면, 주상욱이 김국진에게 물을 뿌림과 동시에 심판과 보복은 끝나고 새로운 리더에 의한 새정치, 다음 에피소드로 넘어가야 했다. 그런데 중간에 느닷없이 물을 뿌리는 멤버에게 모두 기회가 있다고 말을 바꾸어, 결국 이윤석-윤형빈 등 멤버 모두가 김국진의 얼굴에 인정사정없이 물을 뿌렸다.
과연 그게 재밌었을까. 불편하고 거슬렸다. 굴욕적인 물세례를 당했던 김국진이 안쓰럽고 불쌍했다. 주상욱 한명이면 족했다. 배신에 앞장 선 김준호까지 두 명이면 충분히 웃음도 유발됐다. 그러나 정PD가 말을 바꾸면서, 한 명씩 돌아가며 김국진에게 물을 뿌릴 땐 지루하고 한심하고 불쾌했다. 과유불급의 전형이다. 안 하느니 못한 것이 됐다. 맞아주는 김국진이 웃으면서 이해하고 멘트를 쳐주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보는 시청자는 충분히 불쾌할 수 있었다.
선거철이다. 19일 대선투표가 있다. 때문에 남자의자격이 ‘절대권력’이란 소재를 다룬 것 자체는 시의적절하다. 하지만 과정이 평이하고 지루했다. 나름 현실정치를 풍자했건만 주로 입안에서 맴돌았을 뿐, 과정에서 예능의 장점을 살리지 못해 밋밋하고 지루했다. 권위적인 느낌이 강한 남격이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변화를 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이경규중심 남격서열의 연장선에 불과한 식상한 재미추구. 남격이 4년이나 됐음에도, 아직도 멤버들이 자신이나 상대방의 캐릭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멤버는 화려한데 재미면에서 시너지가 충분히 발휘되지 않는다. 게다가 어떤 상황에서 웃음이 유발되고, 눈살이 찌푸려지는지 아직도 파악하지 못하고, 시청자의 눈높이를 반밖에 쫓아가지 못하는 절대약점을 또 다시 노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