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및 드라마

마의 김혜선-이가현, 중견과 신인의 극과극 연기력

바람을가르다 2012. 12. 4. 10:43

 

 

 

‘쓰러져라. 좀 쓰러져. 쓰러져!!!’ 3일 방송된 월화드라마 ‘마의’ 19회에서 현종(한상진)을 바라보는 시청자의 마음은 같았을 것이다. 제발 왕 현종이 고통을 호소하며 쓰러져주길 말이다. 그가 이명환(손창민)과 같은 지독한 악역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쓰러져줘야 의생 백광현(조승우)이 기사회생할 수 있다. 광현이 현종에게 내린 진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선, 그가 복통으로 쓰러져 데굴데굴 굴러줘야 했다.

 

하지만 현종은 시청자의 바람처럼 호락호락하게 쓰러져 주지 않았다. 아픈 내색을 보이다가도 이내 괜찮다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현종이 시청자의 애간장을 태우는 동안, 왕에게 짐승에게나 걸린다고 믿는 담낭석이 있다고 진단한 마의출신 의생 백광현을 퇴출시켜야 한다면서, 삼의사(조선 3대 의료기관 전의감, 혜민서, 내의원)의 의생과 의관들은 전격 파업에 돌입했다.

 

 

 

물론 파업은 이명환이 주도했지만, 이에 동조한 의관과 의생들의 속내도 이명환과 다르지 않았다. 천인인 마의출신 의생 백광현을 동료로 인정할 수 없었다. 백광현 한 명이 문제가 아니다. 천인에게 문을 열어주기 시작하면, 그들의 기득권은 위협받기 때문이다. 그 싹을 잘라 내고자 삼의사의 의원들이 뭉쳤다. 이에 왕 현종도 난감해했지만, 신분이 아닌 능력과 인성으로 의생을 선발하고 개혁을 주도했던 수의 고주만(이순재)도 위기에 노출되었다.

 

누구보다 괴롭고 상심이 큰 사람은 백광현이었다. 자신으로 인해 촉발된 문제가 고주만 등 주변사람에게까지 퍼져나가는 걸, 착한남자 백광현이 눈뜨고 지켜볼 순 없었으니까. 결국 광현은 이명환 등 기득권세력이 원하는 대로, 혜민서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천인 광현은 그릇된 세상을 바꾸는 데 일조하고자 마의에서 인의가 되기로 결심했지만, 혼자의 힘으로는 역부족임을 절감한 것이다. 백광현이 모든 걸 내려놓는 순간, 마침내 현종이 쓰러졌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고통을 호소하는 현종. 하지만 어의인 이명환조차도 그의 병명을 알지 못했다. 현종의 병은, 의서에서는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백광현이 내린 진단과 일치함을 엿볼 수 있다. 이를 간파한 고주만이 혜민서를 떠나려는 백광현을 붙잡았고, 광현의 도움을 받아 왕 현종 구하기에 나섰다. 이명환 등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고주만과 백광현은 자신들의 목숨을 내놓고 왕의 치료에 들어갔다. 그들은 과연 현종을 살려낼 수 있을까.

 

살려 내겠지. 시청자는 예상한다. 하지만 쉽게 예상할 수 있다고 해서, 마의 19회가 재미없다거나, 20회에 대한 기대감이 떨어지진 않는다. 이것이 바로 드라마 ‘마의’가 가진 힘이다. 19회에서 현종이 복통으로 쓰러질 걸 예상하면서도, ‘제발 좀 쓰러져!’라고 애타게 만드는 힘이다.

 

 

 

그 뿐인가. 고통을 신음하는 현종 한상진의 연기는 얼마나 탁월한가. 진짜 아픈 사람보다 더 아파보이는 연기. ‘거, 되게 아파보이네.’ 연기대상 올해의 환자상이다. 그런 현종의 병을 고치기 위해, 목숨을 내놓고 결의를 다지는 고주만과 백광현의 대화는 얼마나 멋지고 감동적인가. 허준과 유의태 사제가 부럽지 않은, 조승우-이순재 콤비의 빛나는 명연기. 외곽에서 광현을 걱정하는 추기배(이희도)-오장박(맹상훈)-자봉(안상태)까지 따뜻한 연기로 드레싱.

 

하지만 재미와 내용면에서 완벽해 보였던 ‘마의’ 19회에도, 구멍을 만들어 버린 배우가 있었다. 얼마 전 연기력논란을 빚었던 조보아? 아니다. 오히려 조보아는 회를 거듭할수록 나아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면 인선왕후 역에 중견연기자 김혜선은 오랜 연기경력을 무색하게 만드는 안쓰러운 발성과 연기력으로, 시청자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발연기란 비판에 직격탄을 맞았다.

 

 

 

인선왕후에게서 묵직한 카리스마를 기대했건만, 김혜선은 한없이 가벼운 연기로 캐릭터를 골로 보낸다. 왕후는 커녕, 상궁연기도 안 되는 포스. 무교탕반 주모 역으로 좌천을 보내도 시원치 않을 수준이다. 연기력도 부족한데, 고주만-백광현 콤비를 불신하고 궁지로 몰아넣는 캐릭터마저 밉상이라 진퇴양난에 빠졌다.

 

그동안 마의에서 인선왕후 김혜선의 발스런 연기가 부각되지 않았던 건, 숙휘공주(김소은)의 혼담 등을 두고 명성왕후(이가현)와 주로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마의 19회처럼 마지막 부분 매우 긴박하고 극적인 상황에서 김혜선의 연기력은 제대로 들통 나버렸다. 그녀의 연기는 시청자로 하여금 분노가 아닌, 짜증을 유발시키고 말았기 때문이다.

 

 

 

김혜선이란 배우가 연기를 잘 한다는 몰라도, 못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드라마 ‘마의’의 인선왕후는, 아직까진 그녀에게 맞지 않는 옷처럼 어색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때문에 제작진이 김혜선에게 그런 수준의 연기를 주문한 건 아닐까 믿고 싶을 정도다. 그만큼 김혜선의 인선왕후 연기에 실망감은 크게 다가온다.

 

명성왕후 역에 신인여배우 이가현의 안정된 연기를 보면, 인선왕후 김혜선의 연기는 더욱 아쉽다. 둘은 매번 함께 등장하는 데 연기력은 극과 극이다. 단아하면서도 현명함을 극대화시키는 안정된 연기의 이가현과 달리, 어리광 수준의 연기로 무색무취의 느낌을 자아내는 김혜선. 중견연기자로서 신인배우에게 연기를 가르쳐줘야 할 입장임에도, 오히려 김혜선이 이가현에게 사극 연기를 배워야 하는 건 아닐지, 웃지 못할 상황이다. 시청자의 입에서 ‘연기 좀 잘해라. 잘 해!!’라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누구보다 중견배우 김혜선의 분발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