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 유선, 출생의 비밀로 곤욕스러운 이유
27일 방송된 월화드라마 ‘마의’ 18회에서, 백광현(조승우)이 혜민서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광현이 의관 취재시험에서, 혜민서 최고의 엘리트 의생 윤태주(장희웅)와 대결을 펼쳐 밀려났기 때문이 아니었다. 광현의 부정 의혹을 조작한 이명환(손창민)-권석철(인교진)의 수작질 때문도 아니었다. 결정적 이유는 왕 현종(한상진)의 건강상태를 진단하고 내렸던 백광현의 처방에 있었다.
백광현의 시험 부정의혹이 제기된 상황에서, 그는 작성한 의안을 통해 결백을 입증했다. 광현이 내놓은 의안은 백지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광현은 현종의 병명에 대해, 어떤 의서에서도 찾을 수 없기에 백지 답안을 내놓았다며, “전하의 담낭안에 돌이 생겼다.”라는 누구도 예상 못한 반전의 진단을 내렸다. 이어 광현은 관련 근거를 제시하며 현종의 병을 상세하게 PT했지만, 끝내 누구도 납득시키지 못했다.
광현에게 기대감을 드러냈던 현종은 물론, 마의 출신의 광현을 늘 지지해주고 아빠 미소를 보여주던 수의 고주만(이순재)조차도 납득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소와 같은 짐승에게나 걸릴 수 있다는 병이 주상전하의 몸속에 발생했다는 광현의 진단자체가, 왕을 능멸하고 왕실을 욕보인 것이라는 이명환의 억측과 악의적인 선동에 있었다. 명환은 즉각 의원 회의를 소집하고 광현에 대한 징계를 논했다.
즉 광현이 내린 처방의 사실관계는 중요하지 않았다. 의관도 아닌 한낱 의생나부랭이가 의관들이 정답이라 내놓은 의안과 전혀 다른, 의서에도 없는 병을 진단해 ‘제발, 나를 믿어주세요.’라고 한 꼴이니, 이명환이 광현을 역적 대하듯이 방방뜨며 반발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고, 광현의 천재성을 인정하던 수의 고주만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광현이 내린 진단이 옳았음을 증명하기 위해선, 현종이 복통(복막염)으로 쓰러지는 외에는 답이 없는 상황.
백광현 미션 클리어가 아닌, 백광현 파이어에 노출됐으니 위기다. 다만 마의 19회 에서 현종이 쓰러졌다는 기분 좋은(?) 반전이 예고된 상황이라, 어쩌면 광현은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도 있을 전망이다. 만일 광현의 진단이 옳았고, 왕 현종을 살려낼 수만 있다면, 마의 출신이란 이유로 개무시 당하던 날들과 이별하고, 왕의 총애를 받는 새내기 의관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광현앓이중인 숙휘공주(김소은)가 그토록 바라던 염원의 시작이기도 하다.
천민이다. 마의 출신이다. 백광현 혼자만의 의지로는 세상의 눈을 벗겨내기 힘든 콤플렉스. 하지만 왕의 총애가 따른다면, 그러한 콤플렉스는 일정부분 상쇄될 수 있다. 그래서 백광현의 위기가 반가운 것이다. 현종이 쓰러졌다는 소식에 웃을 수 있다. ‘왕의 총애’라는 아이템이 걸린 미션은, 백광현이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위기이자 기회. 결과에 따라 신분차이가 부르는 콤플렉스를 완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밌는 건, 백광현은 천민이 아니란 사실에 있다. 소현세자(정겨운)의 총애를 받던 양반 강도준(전노민)의 아들이다. 비록 모략에 의해 강도준은 대역 죄인으로 몰려 억울하게 죽음을 맞았으나, 훗날 재조사를 통해 그는 역적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이를 주도한 게 도준을 배신했던 친구 명환이다. 그리고 명환은 도준의 딸이라고 생각한 강지녕(이요원)을 받아들였고, 현재 자신의 아들 성하와 지녕을 혼인시키고자 한다.
즉 백광현이 강도준의 진짜 아들이다. 강지녕과 갓난아이시절 바꿔치기가 이뤄졌고, 둘은 서로 다른 신분으로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왔던 셈이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혜민서 수의녀 장인주(유선)다. 단지 인주는 자신이 이름을 직접 지어줬던 갓난아이 백광현이, 혜민서에 나타난 의생 백광현인지 확신하지 못할 뿐이다.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어 광현에 대한 꾸준한 뒷조사를 진행중에 있고, 결정적 단서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출생의 비밀’과 관련된 장인주의 행보는 임팩트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매회 백광현의 맹활약이 워낙 두드러지고 몰입도가 높아, 출비조사중인 장인주효과가 크게 부각되지 못하는 형편이다. 드라마에서 이토록 출비가 맥아리없게 다가오는 건, ‘마의’가 손꼽을 정도다. 그만큼 여타 드라마와 달리, 마의 제작진은 출비에 쏟는 정성대신, 마의에서 인의로 성장하는 백광현의 에피소드에 정성을 기울인다는 방증이기에, 오히려 칭찬이 아깝지 않다.
다만 출비 관련 장인주의 에피소드에도 뭔가 터져줬으면 하는 바람을 낳는다. 1회부터 지금까지 장인주는 백광현의 뒷조사를 꾸준히 진행하면서, ‘강도준의 아들이 아니었나’란 좌절->‘뭐라구?’라는 놀람->‘그렇다면 혹시?’라는 의심->멍때리며 갖는 혼란->‘맞는 거 같아.’라며 뜨거워지는 눈시울의 확신->결정적 증거확보 실패로 인한 또 다시 좌절이란 반복된 알고리즘의 연속이었다. 이제 한 번쯤은 이 지루한 고리를 끊을 때가 되지 않았나.
장인주가 그 백광현이 이 백광현임을 알아야, 그녀를 통해 뭔가 새로운 기대감을, 긴장감을 도출할 수 있다. 장인주가 “백광현이 진짜 강도준 아들이다! 강지녕은 강도준 딸이 아니다.”라고 소문을 내고 다니진 않더라도, 광현이 도준의 아들임을 알게 된다면, 장인주의 선택에 따라 백광현-강지녕은 물론이고, 주변 상황이 급변할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마의가 품은 출비는 굉장히 매력적이다. ‘내가 니 애비다!’로 대변되는 일반적 출비와 달리, 눈물속 상봉할 부모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백광현도, 강지녕도 부모가 모두 억울하게 죽고 없다. 그리고 그 중심에 대가를 치뤄야 할 악역 이명환이 있다. 그래서 오히려 드라마 ‘마의’에서 출비가 가져올 후폭풍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어느 순간 출비를 알게 될 주인공 백광현-강지녕으로선, 고민과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부모와 쌍방향으로 해결점을 찾는 것이 아닌, 그들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오히려 어려운 문제로 접어들 수 있다.
그것은 곧 열심히 백광현의 출비를 추적중인 장인주가, 만일 백광현이 강도준 아들이란 사실을 접해도, 그녀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지 판단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다. 내 아들, 내 딸도 아닌데, 장인주가 백광현-강지녕에게 니들은 ‘체인지’라고 쉽게 말해줄 수 있겠나. 둘 다에게 알린다? 한명에게만 알린다? 아예 입다물고 묻어버린다? 장인주에겐 정답을 찾기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그녀의 선택에 따라 효과도, 상황도 달라질 수 있기에, 출비추적보다 출비결과보고가 더 힘든 난제라 할 수 있다. 그래도 장인주는 일단 알아야 할 타임이 됐다. 장인주의 캐릭터도 이제는 좀 극의 중심에서 매력을 어필해야 하지 않나. 백광현의 출비를 두고 긴가민가하며, 매번 같은 연기를 할 수 밖에 없었던 배우 유선도 곤욕스러울 테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