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남자 결말의 비밀, 강마루(송중기)가 정말 서은기(문채원)를 기억해 낸 걸까
해피엔딩이었다. 15일 방송된 수목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 마지막회에서, 뇌수술을 앞둔 강마루(송중기)는 서은기(문채원)를 살해하려던 안민영(김태훈)변호사의 칼을 대신 맞고 아무도 없는 길가에 쓰러졌다. 그리고 7년 후, 다행히 뇌수술을 받았지만 기억상실증에 걸린 마루는 어느 어촌마을 의사가 되어 있었고, 은기는 태산그룹을 버리고 조그만 가게를 열어 마루의 곁을 맴돌았다.
은기는 마루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우리가 사랑했던 사이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저 마루의 곁을 맴돌며 그를 떠나지 않았다. 마루가 기억을 찾든, 찾지 못하든, 그것은 은기에게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강마루라는 남자가 서은기라는 여자를 바라봐주고, 사랑해 줄 수 있다면, 마루가 자신과의 기억을 모두 잊었다고 해도 개의치 않는 듯 했다.
그런데 마루가 은기에게 커플링을 건네주었다. 그것은 7년 전 마루가 뇌수술을 받기 전, 은기에게 주려 했던 반지였다. 그렇다면 마루의 기억이 돌아온 것일까. 알 수가 없다. 기억을 되찾았다고 예상할 수도 있지만, 확신할 순 없다. 아무리 마루의 나레이션속에 기억상실증과 관련된 마루의 비밀이 숨어있다고 한들, 그 비밀조차도 작가가 아닌 이상, 시청자가 해석하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은 예상하고 확신한다. 수술을 받고 기억을 상실했던 마루가 7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어느 순간 과거를, 은기를 기억해냈고, 그래서 그녀에게 주려고 했지만 끝내 건네지 못했던 반지를 7년이 지난 후에야 건넬 수 있었다고. 마루의 나레이션을 유심히 들어보면 은기와 충돌했던 교통사고 당시 그가 생각했던, 신에게 구하고자 했던 기억을 떠올렸기 때문에, 개연성도 있고 설득력도 있는 얘기다. 다만 확신할 수 없을 뿐이다.
은기가 업고 온 아이에게 마루가 했던 말이 있다.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건 사람이라고. 즉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강마루가 서은기를 기억할 수 있고, 교통사고 당시 신에게 했던 말들을 기억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정작 은기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20회 엔딩부분에서 마루가 은기를 모른 ‘척’ 연기했던 것이 아니라, 정말 은기를 몰라서 그런 말과 행동을 보였는지도 모른다.
단지 마루로선 자신의 기억속을 떠돌고 있는 ‘서은기’라는 이름과 현재 마루의 곁을 맴도는 여자의 이름이 같기 때문에 그녀에게 호기심을 느낄 수 있다. 혹시 그녀가 기억속에 은기가 아닐까라는 의심을 품고, 매일같이 그녀의 가게에 들려 샌드위치를 시켜먹으며 관찰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겉으론 표현하지 않았지만, 마루가 은기에게 끌렸을 수도 있다. 그래서 과거 은기에게 주려던 반지를, 현재 만난 전혀 다른 여자라 생각한 서은기에게 준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왜냐하면 강마루가 지난 7년 동안 잃어버린 기억을 찾으려고, 굳이 애썼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을, 얼굴을 찾기 위해, 자신의 과거를, 서은기라는 여자의 과거를 캐고 싶어 했을까. 한두 번 시도하다 포기하진 않았을까. 지나간 과거보단 현재가 중요하다고 느낄 수 있으니까.
은기가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어버렸을 땐, 한재희(박시연)에게 빼앗긴 태산그룹을 찾기 위해, 박준하(이상엽)변호사와 현비서가, 그리고 강마루가, 은기가 기억을 찾을 수도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어떤 면에선 강요에 가까웠다. 반드시 은기가 기억을 찾아야 한다는 접근이었다. 그리고 마루의 부탁으로 은기를 치료했던 의사(조성하)가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반면 강마루가 뇌수술로 기억을 잃어버린 후에, 누가 마루에게 과거를 기억하도록 도움을 주고 애를 썼을까하는 의구심이 남는다. 마루에게 상처가 가득한 과거를, 굳이 은기와의 사랑을 기억하도록 돕기 위해 애썼을까. 한재희가? 박재길(이광수)이? 강초코(이유비)가? 의사(조성하)가? 마루의 사랑을 원하는 서은기조차도 마루가 기억을 되찾길 바라지 않는 것 같은데 말이다. 그저 지금 곁에 살아있는 마루만으로도 은기는 행복해하고 있질 않은가.
즉 마루가 굳이 과거를 기억하는 걸 원하는 사람은 그의 주변엔 사실상 없다고 볼 수 있다. 마루가 과거때문에 얻는 것보다 잃을 게 많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처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가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행복해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은기는 기억할 것이다. 예전에 그녀가 기억을 찾고 싶어할 때, 차안에서 마루가 그냥 이대로가 좋다면서, 그녀가 기억을 찾지 않길 바라는 뉘앙스로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은기는 의아해했지만, 기억이 완전히 돌아올 무렵, 그녀는 마루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서로의 행복을 깨고, 상처가 될 수 있는 과거라면, 차라리 기억하지 못하고 잊혀지는 게 낫다는 사실을.
그래서 착한남자 엔딩에서 마루가 기억을 찾았다고도, 찾지 못했다고도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시청자가 해석하고 받아들이고 기억하기 나름이다. 다만 마루가 기억을 찾았는데도 모른 척한 것이라면, 그것은 마루가 자신과 은기를 위해 모른 척한 것이기 때문에 나쁘지 않고, 찾지 못했는데도 은기에게 반지를 건넸다면, 두 사람은 과거에 상관없이 현재를 사랑하는 것이고, 어떤 면에선 결국 서로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운명적인 사랑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드라마 ‘착한남자’는 해피엔딩이다. 마루의 ‘기억’이 돌아오건, 돌아오지 않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가, 기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재 느끼고 있는 사랑이 중요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강마루가 간절히 바랬던, ‘누구나 하는 평범한 연애를, 세상 사람 누구나 모두가 하는 평범한 사랑을’ 서은기와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다음 세상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 사랑을 하고 행복을 누릴 수 있기에.
착한남자 19회에서 마지막회까지 기대만큼의 매끄러운 과정을 밟았다고 볼 수 없지만, 7년 후의 결말이 좋았다. 해피엔딩이어서 좋았고, 무리하게 마루가 기억을 찾았다거나, 찾지 못했다를 말하지 않아서 좋았다. ‘과거’가, ‘기억’이 중요한 게 아니라, ‘현재’가 중요하다는 것을 시청자에게 보여줬고, 그 시작과 끝이 결국은 지금 느끼는 두 사람의 ‘사랑’을 관통하고 있음을 잔잔하게, 따뜻하게 풀어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