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남자’ 송중기-‘미사’ 소지섭의 결정적 차이
드라마에서 가장 식상한 소재로 꼽히는 ‘출생의 비밀’과 ‘시한부 인생’을 엮어서, 비범한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 작품이 있다. 바로 소지섭-임수정 주연의 ‘미안하다 사랑한다’. 드라마가 방영할 당시 수많은 미사폐인을 양산했을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도 대단했지만, 작품의 짜임새, 완성도가 워낙 뛰어났다. 덕분에 매회 눈물이고 매회감동이었다. 역대급 멜로드라마로 평가받아도 손색없는 수작이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집필한 이경희 작가가 송중기-문채원-박시연을 앞세워,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로 또 다시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시청률도 동시간대 1위를 꾸준히 선점했고 완성도면에서도 칭찬이 아깝지 않다. 하지만 ‘미사’급 재미는 아니었다. ‘미사’급 감동도 주기에도 2% 부족했다. 왜 일까. ‘착한남자’가 잘 만들어진 드라마는 분명한데, 왜 재미와 감동에선 ‘미사’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걸까.
남자주인공의 차이다. 강마루(송중기)와 차무혁(소지섭)의 차이다. 착한남자 강마루를 표현하는 송중기의 연기력은 뛰어나다. 놀랍다. 만일 송중기가 아니었다면 강마루라는 캐릭터는, 착한남자라는 드라마는 중간에 힘을 잃고 추락했을지 모른다. 그만큼 드라마에 끊임없이 긴장감과 재미의 숨을 불어넣은 데엔 제작진 못지않게, 배우 송중기의 힘이 받쳐주었기에 가능했다.
그럼에도 드라마 ‘착한남자’는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아직은 뛰어넘지 못했다. 멜로드라마의 성패를 좌우하는 결정적 키인, 남자주인공 강마루는 차무혁을 극복하지 못했다. 극복할 수가 없었다. 송중기의 연기력이 소지섭보다 못했기 때문일까. 아니다. 송중기도, 소지섭도 극중 본인들의 캐릭터를 120%이상 소화해냈다. 단지 캐릭터가 가진 설정의 한계가 결정적 차이를 빚는다.
갓 태어나 호주에 입양되고, 양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가 차무혁(소지섭)이다. 그 아이가 성인이 되어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를 찾겠다고 나타났다. 머리에는 수술불가로 길어야 3~6개월 살 수 있는 시한부 총알하나 박고서. 그런데 그의 기대와 달리 맞아주는 건, 교통사고로 바보가 된 이란성 쌍둥이 누나 갈치엄마와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고 초등학교를 다닐 나이에 김밥을 팔며 엄마를 부양중인 조카 김갈치. 반면 엄마 오들희(이혜영)라는 사람은 또 다른 아들 연예인 최윤(정경호)이랑 둘이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더라.
현실을 접한 차무혁의 심정은 어땠을까. 돌아버리지. 그가 엄마에게 복수를 결심한 것도 이해가 된다. 핏덩이였던 쌍둥이를 버리고, 또 다른 남자랑 눈이 맞아 낳은 아들은 왕자로 키우고 있다? 버려진 자식중 한 명은 교통사고로 바보가 되고, 또 한명은 총에 맞아 죽을 날짜를 받아놓은 상황인데 말이다. 어머니에게 복수? 간단해졌다. 당신이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최윤이가 심장이식이 필요하다니, 잘 됐다. 버린 아들 차무혁이 심장떼다가 최윤에게 달아주면 되겠구나. ‘어머니, 행복하십니까?’
멜로드라마에서 차무혁만큼 불쌍한 남자주인공이 있었을까. 차라리 가족을 찾겠다고 나타나지나 말 걸, 자신이 죽으면 누이 갈치엄마랑 갈치는 어떡하지. 누가 그들을 돌보지라는 걱정으로 마음 놓고 눈도 감을 수도 없는 상황. 제 딸인지도 모르고 도둑년으로 모는 어머니를 지켜보는 심정. 제 아들인 줄도 모르고 심장이식을 부탁하는 어머니를 대할 때. 은채(임수정)를 사랑하는 것조차 미안해서, ‘미안하다, 사랑한다’가 돼버린 말, 시간들.
그렇게 드라마 ‘미사’는 매회, 세상 어디에도 없는, 지독하게 불쌍한 남자 차무혁으로 인해 시청자의 눈물을 쏟게 만든다. 이를 가능하게 만든 결정적인 원인은, 차무혁의 머릿속에 박힌 총알이다. 수술이 불가한 총알. 차무혁의 죽음이 예정되었기 때문이다. 희망이 없다. 차무혁이 죽는다는 전제를 깔고 시청하기 때문에, 그와 부딪히는 인물간의 갈등과 오해가 극대화될 때마다 지독할 정도로 외로워지는 그가 불쌍해서 견디기 힘든 것이다.
‘착한남자’ 강마루는 ‘미사’ 차무혁에 비하면 그나마 양반이다. 마루의 여동생 강초코(이유비)와 친구 박재길(이광수)의 상황이, 무혁의 누이 갈치엄마와 조카 갈치보다는 낫다. 교통사고로 뇌가 다친 마루는 수술을 하면 살 가능성이 있지만, 무혁의 뇌에 박힌 총알은 수술자체가 힘들다.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제로다. 즉 주인공의 엇갈린 사랑은 논외로 치더라도, 주어진 상황과 살 수 있는 ‘가능성’에서, 상대적으로 마루는 무혁의 독하고 극단적인 설정을 극복할 수 없다.
‘차무혁=절망’이라면, 강마루에겐 살 수 있는 가능성, ‘희망’이 늘 시청자의 뇌리에 박혀있기 때문에, 마루의 가능성은 매순간 슬픔을 극대화하는 데엔 오히려 방해가 된다. 예를 들어 ‘미사’에서 은채가 무혁에게 죽어버리라고 하는 말과 ‘착한남자’에서 은기가 마루에게 죽여 버리겠다고 하는 말을 통해, 시청자가 안타깝고 슬프다고 느낄 순 있어도 그 크기나 강도는 전자가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착한남자’에는 ‘미사’에 없는 살기 충만한 악역캐릭터가 존재한다. 상황에 따라 강마루를 살해할 수 있는 안민영(김태훈)변호사와 한재식(양익준)이다. 마루의 목숨을, 희망을 위협하는 존재. 그들을 통해 긴장감을 조성한다. 시청자에게 마루를 걱정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들의 위협조차 마루가 살 수 있는, 행복을 질 수 있는 가능성과 희망을 완전히 상쇄하진 못한다. 그것이 강마루가 차무혁의 매력을 극복하기 힘들었던 이유다.
종영을 앞둔 수목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의 결말이 새드엔딩일까, 해피엔딩일까 궁금해 하는 시청자가 많다. 이경희작가의 전작인 ‘미사’와 결부시켜 엔딩을 예상하는 시청자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강마루도 차무혁처럼 죽는 결말이 나오는 게 아닐까란 걱정도 앞설 수 있다.
사견이나 강마루는 죽지 않았으면 한다. 마루가 죽지 않고 줄 수 있는 감동과 여운의 최대치를 기대한다. ‘미사’와 ‘착한남자’는 다르기 때문이다. 차무혁과 강마루가 다르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차무혁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지만, 강마루는 ‘죽지 않을 수도 있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차무혁이 주도한 ‘미사’의 분위기와 강마루가 주도한 ‘착한남자’의 분위기가 같은 듯 다르게 흐를 수 있었고, 차무혁을 ‘휘발성이 강하게’ 표현한 소지섭과 강마루를 ‘절제미가 빛나도록’ 표현한 송중기의 톤이 서로 다르게 빛날 수 있었다.
그렇게 소지섭-송중기는 드라마 전반의 분위기를 지배했다. ‘미사’의 소지섭은 결말까지 자신의 톤을 유지하며 완성도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제는 ‘착한남자’ 송중기의 차례다. 단순히 마루가 죽느냐 사느냐에서 갈리지 않는다. 결말에서 일시적으로 줄 수 있는 감동이 아니라, 기획의도에 따른 ‘착한남자’라는 드라마의 목표 ‘점’, 강마루라는 캐릭터의 개성강한 ‘면’, 배우 송중기가 그려낸 매력적인 ‘선’이 결말까지 조화를 이루고 이어질 때 입체적으로 완성된다. 강마루가 차무혁을 극복할 수 있다. ‘착한남자’가 ‘미사’를 극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