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남자 문채원, 리얼과 조작사이
조용한 아침. 평온하다. 남자(강마루)는 샤워를 하고, 여자(서은기)는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남자는 샤워도중 거울에 ‘행복’이란 두 글자를 새긴다. 그리고 지운다. 거울에 비친 강마루(송중기)가 미소를 짓고 있다. 역시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인가. 어느새 남자는 요리하다 말고 과거를 떠올리려 애쓰는 여자의 등뒤로 다가와, 마치 딴 생각하지 말라는 듯 달콤한 백허그를 작렬한다. 기억을 더듬으며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시달리던 여자는 그제서야 안도한다. 하지만 여자의 불안감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24일 방송된 수목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 13회의 시작은, 이처럼 평온함을 가장한 불안감이 감돌았다. 그 분위기는 마치 줄리아로버츠 주연의 영화 ‘적과의 동침’ 오프닝을 연상시킨다. 폭풍전야. 하지만 드라마 ‘착한남자’ 13회 초반의 분위기는 중반까지 이어져 일정함을 유지한다. 강마루가 한재희(박시연)에게 개수작부리지 말라고 했던 사나운 말도, 한재희가 서은기에게 가자미식혜로 의도적인 간을 볼 때도, 불안을 동반하지만 평온함은 깨지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에서야 우려했던 폭풍이 몰아친다.
서은기(문채원)가 교통사고로 뇌손상을 입어 기억상실증에 걸렸지만, 그 사실을 은폐하려 박준하(이상엽)변호사가 중간에 개입해 관련자료를 조작한 게 확실하다는 안민영(김태훈)변호사의 말에, 한재희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마루-은기’커플의 위기가 증폭됐고, 병원주변 벤치에서 자고 있던 서은기를 깨운 강마루에게, 은기가 “누구냐니까, 너!”라며 차가운 안면몰수를 감행했을 때 폭발했다. 도대체 드라마 ‘착한남자’ 13회는 무슨 일이 일어났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었을까.
한마디로 조작이다. 조작에서 시작해서 조작으로 끝났다. 신혼부부를 연상시키는 마루-은기의 행복한 아침을 방해한 것은, 마루를 수사하겠다고 찾아든 검찰수사팀이었다. 마루-은기의 집을 압수수색했다. 태산그룹의 정보를 마루가 타회사로 불법유출했다는 이유였다. 물론 그건 한재희-안민영이 마루를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꾸민 음모고 조작이었다.
한재희는 동생 은석에게 냉담하고 막대했던 서은기가 그와 함께 놀아주는 모습에 당황했고, 조개알러지가 있는 은기가 무심코 조개를 먹자 두 번 놀랐다. 그래서 재희는 은기가 소름끼치게 싫어하는 음식 가자미식혜를 내놓았다. 그동안 내가 알던 서은기가 맞는지 확실히 검증하기 위해서, ‘우리 서은기가 달라졌어요.’라면 무엇이, 왜? 그러나 때마침 마루가 도착했고, 가자미식혜가 식탁에 오른 이유를 알아채고는, 마루가 조작한 은기의 메모를 재희에게 남기고 떠났다.
이어 한재희와 갑론을박끝에 일부 마루와 관련된 기억을 떠올린 은기는, 머리가 아프다면서 실신했다. 은기가 가장 기억하고 싶었던 마루에 관한 이야기를 재희덕분에(?) 기억해냈음에도, 실질적으로 그 기억을 온전히 받아드리지 못했다. 그 기억은 은기에게 분노였고 아픔이고 상처였기 때문이다. 고통에 신음하던 은기는 결국 병원에 실려 간다.
은기가 눈을 떴을 때, 그녀 옆에서 그녀의 손을 붙잡고 지켜주던 마루의 잠든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은기는 혼란스러운 눈빛을 보이다가 다시 눈을 감는다. 마루가 눈을 떴을 때, 은기는 보이지 않았다. 마루는 은기를 찾아 병원주변을 돌아다니다가, 벤치에 누워 잠이 든 은기를 찾아내고 그녀를 깨운다. 왜 은기는 착한남자 마루를 피해 말없이 벤치로 갔을까.
아마도 재희와 나눈 대화를 통해, 마루에 대한 옛기억이 떠올랐고, 그것이 잊혀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은기는 마루에게 누구냐면서, 처음 보는 사람인 양 경계심을 드러냈다. 그래서 은기가 마루를 전혀 기억하지 못해서 아니라, 마루를 모른 척한 은기의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착한남자’ 13회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 은기의 행동이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바로 13회내내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입을 돌고 돌았던 거짓말이고, 조작 말이다.
그래서 ‘조작’이란 극적장치를 매끄럽고 분주하게 메워가던 ‘착한남자’ 13회는 어떤면에선 다소 지루할 수도 있었다. 바람앞에 촛불은 늘 위태롭지만, 정작 촛불이 꺼져야 두려움과 긴장감이 최고조로 올라서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촛불을 꺼진 것 마냥 위태롭게 만든 주인공이 있었으니 서은기 역에 문채원이었다. 조작이란 극적장치에 서은기를 열연한 문채원의 리얼함을 자아내는 연기가 극의 긴장감과 재미를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특히 한재희와 강마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의혹을 가지고 혼란을 겪으며, 끝내 실신까지 이어진 문채원의 집중력이 살아있는 연기는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완벽에 가까웠다. 드라마는 ‘조작’을 얘기하는 데, 문채원은 극 안에 ‘리얼’을 불어넣고 있었다. 픽션안에 리얼을 숨쉬게 하는 연기. 그 순간만큼은 착한 연기력의 소유자 송중기가 부럽지 않았다. 그렇게 착한남자 13회는 문채원의 원맨쇼로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착한남자 13회에서, 기억을 빨리 되찾아서 마루를 돕고 싶다던 은기에게 마루가 말했다. 그냥 이대로가 좋다고. 그렇게 마루는 은기가 기억을 찾는 걸 두려워하고 있었고, 그만큼 은기를 사랑하고 있었다. 은기가 마루가 했던 그 말의 진심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은기가 기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거의 다 찾았는지도 모른다. 마루를 모른 척하는 은기를 통해 촛불이 꺼진 13회의 마지막은, 폭풍이 몰려 온 14회의 기대감을 부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