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남자 12회, 빵터진 데스노트에서 눈물의 하모니카까지
18일 방송된 수목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 12회에서, 다신 상관 안 한다던 내 인생에 왜 또 뛰어들었냐고 묻는 한재희(박시연)에게 강마루(송중기)가 말했다. “이 세상에서 서은기(문채원)가 없길 바라는 어떤 괴물로부터, 내 여자를 지켜야겠어서.” 그랬다. 마루의 눈에 더 이상 재희는 ‘사랑’이 아닌 ‘괴물’로 인식되고 있었다. “이 음식들도 은기가 먹기 전에 내가 다 먹어 볼 거에요. 뭐가 들었는지 어떻게 알아.” 마루의 차디찬 냉소에 재희는 그대로 얼음이 되고 만다.
시원하고 통쾌했다? 공평한 것이다. 남자(강마루)에 미쳐서 아버지(서회장)의 임종도 지켜보지 못한 개념없는 딸이란 말로 서은기에게 일침을 가하고 상처를 입힌 한재희에게, 강마루가 똑같은 말로써 재희에게 상처주었기 때문이다. 서회장의 죽음에 일조한 재희가 은기를 비난하며 상처를 줄 권리는 없었다. 용서를 구해도 모자를 판에. 은기를 향한 재희의 언행은 오히려 마루를 자극했다.
“내가 은기를 죽이고 싶어한다고 생각하니?” 억울하다는 듯이 재희가 말했다. 마루만큼은, 예전에 나를 무한 사랑해주던 강마루라는 착한남자만큼은, 나를 이해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은기를 희생시키는 괴물따위로 바라봐 주진 않길 바라는 재희의 심리가 깔려있다. 그것은 곧 자신과 마루가 원치 않는 적이 되어, 피토하는 싸움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한재희는 은기의 희생이 아닌, 태산그룹만 손에 쥐면 되는 걸, 마루 너는 알고 있잖아란 반문이다.
하지만 재희는 여전히 착각하고 있었다. 은기의 희생없이 재희가 태산그룹을 온전히 손에 넣을 순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마루의 대답은, “그러게요, 뭐가 무섭고 두려워서, 돌대가리도 안하는 짓을 하려고 하십니까, 대체?”가 된다. 태산그룹을 원하면서, 은기의 희생은 없다는 재희의 논리는 성립하지 않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다.
이어 한재희가 아닌 서은기를 눈이 뒤집힐 정도로 사랑하는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그녀의 원래자리를 찾아주도록 돕겠다면서, 나 강마루와 적으로 싸우고 싶지 않다면, 당신이 쥐려는 태산의 모든 걸 내려놓으라고 최후통첩을 날린다. 그러자 재희는 절규하듯이 분노를 폭발하며 말한다. 태산은 내 것이라고. 내가 선점했고, 내가 가졌다고 생각하면 모두 내 것이 된다고. 절대 포기할 수 없으니, 강마루 어디 한번 붙어보자.
착한남자 12회 초반 이뤄진 강마루와 한재희의 독설대결이 좋았던 건, 단순히 서로를 미워하고 비아냥대서가 아니었다. 차디찬 냉소에 담았지만 마지막까지 재희를 설득하려 했던 착한남자 마루의 심정과, 그걸 알면서도 외면하고 부정하는 악녀 한재희의 절규에 가깝던 몸부림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힘을 빼고도 차가움의 끝을 보여준 송중기의 연기는 명불허전이었고, 뜨겁도록 스스로를 태우던 박시연의 연기도 충분히 인상적이다.
중반은 서은기-안민영(김태훈) 데스노트 공방전이 빛났다. 서은기가 글공부하는 공책을 발견한 ‘매의눈’ 안변호사. 은기와 안변호사의 독대속에 긴장감. 사실 안변호사가 은기앞에 공책을 꺼냈을 때, 웃음이 터졌다. 데스노트도 아닌 저학년용 공책이 긴장감을 주다니... 이어 안변호사의 받아쓰기 미션에 떨기 시작한 서은기. 분명 기억상실증에 걸렸음을 숨겨야 하는 여주인공의 위기였지만, 이를 극대화시키는 소품 ‘공책’의 효과, 받아쓰기는 오히려 긴장감을 이완시켰다.
그래서인지 내가 누군지 아느냐고 묻는 안변호사에게, 은기가 공책에 펜으로 쓴 ‘당신은 나쁜 사람입니다.’는 빵터질 정도의 웃음을 주었다. 이어 안변의 시험을 마친 후 스트레스를 받은 은기의 후유증까지. 물론 웃음이 나긴 했어도 그 과정만큼은 세련됐다. 반전의 재미를 준 동시에 은기의 순수함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매의 눈 안변호사에게 은기의 상태가 현재 정상이 아님을 들켜 위기를 가속시킨 셈이었지만.
후반은 강마루가 빚은 감동의 절정이었다. 데이트하자는 말이 쪽팔릴 정도로 순수한 은기에게 더욱 반하게 된 마루는, 직접 보쌈에 나섰다. 그녀를 데리고 강가를 찾았고, 갈대밭을 찾았다. 예전에 은기가 마루에게 눈물로 사랑을 말하며, 그와 나누고 싶던 일상, 데이트, 보통의 연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이어진 마루의 독백은, 그가 은기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시청자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러나 마루가 은기를 사랑할수록 슬프다. 마루가 은기에게 들려준 하모니카 연주에 왜 눈물이 날까. 하모니카 연주곡은 동요 ‘할아버지의 낡은 시계’다. ‘길고 커다란 마루위 시계는 우리 할아버지 시계~’로 시작하는 노래 가사는, 늘 다정다감했던 할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시계도 멈추었다는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때문에 은기가 만일 기억을 되찾는다면, 그녀를 사랑하는 착한남자 마루의 ‘시계’도 멈추는 게 아닐까.
모를 일이다. 왜냐하면 한재희를 사랑했던 강마루의 시계는 멈추었지만, 서은기를 통해 마루의 시계는 다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마루의 시계를 숨쉬게 만들고, 앞으로도 숨쉬게 만들 수 있는 건 은기의 사랑인 셈이다. 마루와 함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터널에서, 은기는 순간적으로 교통사고의 기억을 떠올렸다. 은기와 마루의 악몽과도 같았던 순간을, 기억을.
기억상실로 멈추었던 은기의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루는 어떻게 될까. 결국 은기에게 버려질까. 한 가지 분명한 건, 시계는 두 개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은기와 마루가 서로 사랑한다면 그들이 공유할 시계는 하나면 충분하다. 그래서 결말은 은기와 마루가 함께 할 것이란 예상을 하게 한다. 단지 그들의 시계가 과연 멈출지, 아니면 서로가 시침과 분침이 되어 행복한 원을 그리며 살게 될 지는, 여전히 모를 일이라, 긴장타고 지켜봐야 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