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및 드라마

메이퀸, 두가지 충격고백과 실소를 낳은 디테일

바람을가르다 2012. 10. 14. 11:48

 

 

 

 

 

 

 

주말드라마 ‘메이퀸’은 통속극이다. 스토리라인이 매우 익숙하다. 그래서 시청자가 극을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고 쉽게 몰입할 수 있다. 그렇다. 익숙하다는 것, 쉽다는 것은 그만큼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시청자를 이해시키기 위해, 사건을, 과정을 복잡하게 유통시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통속극에서 과정에 대한 설명과 포장이 많아지면, 오히려 극이 지루해지고 군더더기만 늘어날 뿐이다.

 

‘메이퀸’은 통속극의 장점을 살려, 군더더기를 최소화하고 내용을 빠르게 전개시키고 있다. 완급조절은 주인공 중심으로 전개되는 일반 미니시리즈와 달리, 조연들의 캐릭터를 사건의 외곽이 아닌 중심에 놓고 다양하게, 무게 있게 구축한 뒤, 그들의 분량을 최대한 확보했다. 극의 핵심이 될 에피소드들은, 주인공뿐 아니라 주변인물을 두루 거치면서 전개돼, 긴장감과 속도감을 높일 수 있었다.

 

 

 

13일 방송된 드라마 ‘메이퀸’ 17회에서도, 이러한 장점이 나타났다. 천해주(한지혜)에게 갑작스런 이별통보를 해야 했던 박창희(재희)에서 시작했다. 아버지 박기출(김규철)을 버릴 수 없다며 이별을 얘기했고, 창희의 이별 사유에 해주는 이런저런 토를 달지 않았다. 15년이란 연애기간의 종지부치곤 참 쿨했다(?). 물론 해주는 여전히 창희를 사랑하고 이별을 아파했다, 그건 창희도 마찬가지였다.

 

즉 해주와 창희는 입으로만 이별했을 뿐, 가슴으로 이별하진 못했다. 여기서 극적인 대반전이 일어났다. 해주아버지 천홍철(안내상)을 죽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절대 해주를 며느리로 삼지 않을 거라 여겨진 박기출이, 처참하게 망가지는 아들 창희를 차마 외면하지 못했다. 여기에 그동안 기출을 종처럼 부려먹던 천지조선 장도현(이덕화)회장이, 박창희를 종으로 삼으려는 걸, 아버지 기출이 더는 견딜 수 없었다.

 

 

 

기출이 홍철을 죽인 결정적 증거 차량번호판을 확보한 장도현은, 이를 미끼로 특수부검사 박창희를 협박했고, 기출-창희 부자는 궁지몰린 상태였다. 그래서 ‘종은 내운명’ 박기출은, 아들 창희마저 ‘너도 종운명’을 찍게 만들 수 없었다. 때문에 기출은 창희에게 말했다. 네 할아버지가 종으로 살다가 맞아 죽었고, 나는 장도현의 종으로 살았다. 하지만 창희, 너만은 장도현의 딸랑이로 살길 원치 않는다고. 그러니 네가 사랑하는 해주와 멀리 외국으로 떠나 행복을 누리며 살라고.

 

박기출의 충격고백, “너의 할아버지도 종이었다.”에 이은 “아버지는 잊고, 사랑하는 해주와 외국으로 떠나라.”에 아들 박창희도 충격을 받았다. 가문의 비밀(?)을 알았고, 아들을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는 아버지의 진심을 재차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창희는 해주를 다시 찾아가, 공항으로 반강제로 데려간 뒤, 사랑을 지키고 행복을 찾아 외국으로 떠나자고 말했다. 급박한 창희와 달리, 난데없는 제안에 거부감부터 보인 해주. 그 틈을 비집고, 장도현이 해주에게 문자메세지를 발송했다. 천홍철을 치고 간 박기출 트럭의 차량번호판이 찍힌.

 

 

 

메이퀸 17회 전개의 긴장감과 속도감은, 창희와 해주의 심경과 관계 변화에 있어, 박기출-장도현이 개입되면서 발생했다. 요약하면, 해주에게 창희의 이별 통보->이별 전격합의->이별의 조정기간-창희의 망가짐과 폭력시위, 시도 때도 없는 해주의 눈물->박기출의 충격고백->이별취소, 창희 “해주야, 외국으로 떠나자.” 해주 “뭔 소리당가?”->장도현, 해주에게 긴급문자발송으로 창희를 발목잡다.

 

위 요약본만으로도, 웬만한 주말드라마에선 2회 분량이 나올법하지만, 메이퀸은 단 1회 안에 소화시켰다. 뿐만 아니라 박기출에 이은 눈물의 충격고백 2탄, 이금희(양미경) “차버릴 땐 언제고, 왜 다시 날 찾아왔나?”가 등장했다. 죽은 줄 알고 있는 유진(한지혜)이가 사무치게 그립고, 가슴으로 키운 아들 장일문(윤종화)의 악질적인 삐딱함에 속상해 한 이금희가 술을 마시던 와중, 아내를 걱정하던 장도현에게 눈물을 쏟으며 말했다.

 

당신이 날 버리고, 일문이 엄마를 만나 결혼했을 때. 우린 사이는 거기서 끝이었다고. 그런데 다시 날 찾아와 흔들어서 원망스럽다고. 즉 금희와 도현은, 각자 남편 윤학수와 아내 일문이 엄마를 만나기 전에 이미 연인사이였고, 남편과 아내를 잃은 두 사람이 재혼했다는 얘기를, 금희의 입을 통해 시청자에게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금희의 발언이 충격인 건, 잃어버린 딸 유진(천해주)의 친부가 윤학수인지, 장도현인지 시청자를 헷갈리게 만든 ‘출비속에 출비’였기 때문이다.

 

 

 

이렇듯 메이퀸 17회의 빠른 전개, 캐릭터의 심경 변화, 갈등, 출비 등 각종 소스들로 재미를 낳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창희와 해주의 이별과 아픔을 집중 조명하느라, 도대체 ‘배는 언제 만들 건가?’라는 의구심. 용접공에서 천지조선 회사원이 된 해주의 겉돌기. 해주는 강산(김재원)에게 배우던 설계공부도 딜레이, 회사에선 지각, 자리비우기 등으로 매번 직장선배들에게 깨지는 게 일이다. 선주감독관 강산도 요즘은 죽은 아버지에 관한 진실찾기와 해주는 지금 뭐하나에 열중하고 있다.

 

메이퀸 17회의 전개는 분명 빠른 데, 조선업이란 배경, 주인공들의 직업과 관련해선 캐릭터들이 여전히 정체된 인상을 주었던 게 아쉽다. 좀 더 디테일하게 접근하면 조연들의 캐릭터에서도 묻어난다. 대표적으로 장도현과 박기출이 사납게 대립하다가 싸움이 붙고, 경호원들의 도움을 받은 도현이, 창희가 어디로 갔냐면서 기출의 목을 구두로 밟는 장면이었다.

 

 

 

도현이 기출의 목을 구두로 강하게 밟은 상태에서, “박창희를 어디로 빼돌렸어?”라고 물으면 숨도 제대로 못 쉬는 기출이 대답할 수 있겠나. 구둣발로 목을 짓누르다가도 살짝 빼주고선 대답하도록 추궁했어야 하지만, 도현은 오직 밟는 데 올인했다. ‘댄스위드더스타’ MC출신 이덕화가 구둣발을 잠시 빼고 추궁했어야 할 타이밍을, 스탭을 놓친 셈이다.

 

그런데 더 웃긴 건 박기출이다. 도현과 그의 경호원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아 실신직전이었다. 구둣발에 목이 짓눌려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상황에서, 양손으로 도현의 구두를 밀어내는 것만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창희는 외국으로 떠나서, 절대 못 찾을 거다.”라는 말은 왜 했을까. 창희가 집 떠난 지 얼마나 됐다고. 무엇보다 ‘외국으로’간다는 양질의 정보를 너무 허무하게 알려줬다. 막말로 도현에게 창희를 어서 빨리 잡으라고 지도를 펼쳐 장소를 콕 찍어준 격이다.

 

 

 

박기출의 불필요한 실수였다. 어차피 장도현이 박창희에게 전화를 걸고, 해주에게 차량번호판이 찍힌 문자메세지만 보내도, 도현은 창희의 숨통을 충분히 조일 수 있었다. 기출의 “창희는 외국으로 갔을 거다.” 한 마디는, 위기와 갈등으로 극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실소를 자아내게 만들었고, 아들 창희를 향한 아버지 기출의 눈물 나는 부성애속에 옥에 티를 새긴 격이다.

 

이런 게 통속극의 아쉬움이다. 시청자 입장에선 스토리라인이 익숙하고 이해가 쉬워, 제작진입장에서 넣어봤자 군더더기가 될 만한 장면은 제거하고 돌직구스타일로 얼마든지 전개에 속도감을 높일 수 있지만, 그 속도감에 도취하다 보면 허술한 장면도 자주 노출되고, 캐릭터들이 앞뒤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튀거나 억지스럽게 느껴지기 쉽다. 메이퀸은 통속극이다. 통속극에 어울리는 최적의 전개속도를 보여주고 있다. 다만 전개속도를 맞추기 위한 이음새는 좀 더 세심하게 다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