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및 드라마

착한남자, 결말예상폐해-시청자가 놓치기 쉬운 건?

바람을가르다 2012. 10. 12. 10:20

 

 

 

여행을 떠나기 위해 기차를 탄다.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향해 기차가 출발한다. 얼마쯤 왔을까. 목적지까진 한 반쯤 온 것 같다. 그럼 목적지 도착까지 나머지 반이 걸리는 시간 동안, 나는 시계를 보는 횟수가 많을까. 달리는 기차의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보는 횟수가 많을까. 과연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나에게 즐거움을 혹은 도움을 줄까.

 

11일 방송된 수목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 10회에서, 강마루(송중기)는 교통사고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병원을 찾은 마루에게, 마루의 선배는 뇌수술을 강하게 권했다. 교통사고로 뇌막혈관이 파열된 이후, 미세한 출혈이 계속된 것 같다면서. 이에 마루는 "이게 사망률이 20%쯤 되나? 내가 재수 없는 놈이긴 한데 20%에 끼지는 않겠지?"라고 마치 남 얘기하듯 대꾸한 뒤,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어 당장은 수술받을 수 없다고 못박았다.


 

 

드라마 ‘착한남자’를 즐겨보는 시청자라면, ‘교통사고 후유증이라니? 결말의 복선인가? 결국 마루가 죽는 새드엔딩인가?’라며 놀랐을 것이다. ‘착한남자’ 강마루의 뇌출혈을 보며, 뇌에 총알이 박혀 6개월을 넘기지 못할 거라던 이경희작가의 전작 ‘미안하다사랑한다’ 차무혁(소지섭)이 오버랩된 시청자도 많았을 것이다. 주인공이 죽는 게 감동과 여운을 위한 능사가 아닌데 너무 막나가는 거 아니냐며, 지독한 설정에 분개한 시청자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 시청자가 ‘착남’의 강마루를 보며 ‘미사’의 차무혁을 떠올리고, 비극적 결말을 예감할 수도 있다. 다만 드라마의 결말을 예상하기엔, 착한남자는 이제 10회를 마쳤고, 총 20부작 중에 절반밖에 보여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주인공 친구라면 모를까. 평탄한 삶을 사는 주인공은 없다.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심지어 강마루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것도 고속도로에서 달려오던 서은기(문채원)의 차량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그렇다면 멀쩡한 비주얼의 강마루가 더 이상할 뻔했다. 늦기 전에 수술을 받는다면 80%의 생존율을 보장한다는 뇌막혈관 파열로 인한 핏덩이와 미세출혈은, 오히려 주인공 강마루로선 운이 좋았다고 볼 수도 있다.

 

 

 

강마루의 교통사고 후유증은,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면, 때로는 떠안아야 하고 떠안을 수 있는 짐이고 무게다. 그것이 결말로 가는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지만, 드라마가 반환점을 돌고 있는 현 단계에서 핵심은 아니다. 때문에 결말에 대한 지나친 호기심이 드라마를 즐기는 데, 도움이 아닌 방해가 되면 곤란하다. 그것은 곧 기차를 타고 얼마나 왔는지 줄곧 시계만 쳐다보다가, 정작 달리는 기차를 타야만 볼 수 있는 차창밖에 아름다운 풍경을 놓치는 우를 범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20부작 드라마 ‘착한남자’가 10회를 마친 시점에서, 시청자가 놓치기 쉬운 건 무엇일까. 바로 강마루(송중기)-서은기(문채원)-한재희(박시연)의 처음 만남이고 모습이다. 지금은 끝이 아니라, 시작을 봐야 한다. 1,2회 때의 그들과 9,10회 때의 그들은 얼마나 달라져 있나. 서로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고, 또 받았는가. 그것을 캐치하고 바라봐야 드라마 ‘착한남자’의 내용을 이해하고 즐기는데 유용하다.

 

 

 

한재희가 교도소에서 출소한 강마루와 6년 만에 재회했을 때, 그녀는 과거 마루가 사랑했던 재희가 아니었다. 재희는 태산그룹이라는 부와 권력을 쫓았고, 서회장(김영철)의 후처가 되었다. 그녀의 선택이 과연 나쁜 것인가. 절대 악인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마루의 입장에선 위선이고 탐욕이며 악이었다. 다른 사람의 희생, 마루의 인생을, 희생을 밟고 올라선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한재희가 마루와 초코를 위해 선의로 마련한 10억조차 왜곡된 결과를 낳는다.

 

하지만 마루는 재희의 위선과 탐욕마저 수시로 망각할 정도로 그녀를 사랑했다. 재희를 사랑했기에 그녀의 주변을 맴돌았고, 서은기를 이용하려 들었다. 마루는 예전의 내 모습, 행복했던 시절을 찾기 위해, 한재희마저 예전의 모습으로 돌려놓으려 했다. 그렇게 어느순간 사랑은 집착이 됐다. 그 과정에서, 서은기라는 희생양을 낳았다. 재희를 사랑했던 자신과 닮은 ‘여자 강마루’ 서은기의 인생을 망치고 있었다.

 

 

 

마루는 재희를 찾기 위한 자신의 방법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동시에 별장에서 자작극을 펼친 한재희를 보고, 더 이상 예전으로 돌이킬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래서 마루는 시간을 거슬러 처음으로 돌아가려 했다. 여고생 한재희와 처음 만났던 시점이 아니라, 살인죄를 그녀 대신 뒤집어쓰고 교도소에서 출소한 시점으로. 서은기를 만나기 전으로. 그래서 은기의 사랑을 받아줄 수 없었고, 그녀에게 상처가 되는 거짓말로 이별을 고했다.

 

마루에게 재희가 절대 포기할 수 없었던 사랑이듯, 은기에게 마루도 그랬다. 마루가 의도적으로 접근했다고 해도, 은기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용서하려 했다. 강마루는 원래 그런 남자가 아니라고 은기는 굳게 믿었으니까. 그건 마치 재희가 태산그룹 서회장의 후처가 되었다는 말을, 재길(이광수)과 초코(이유비)에게 듣고도, 마루가 절대 믿지 않았던 것과 같고, 그 사실을 확인하고도 재희의 욕망을 부정하고, 순수했던 재희를 떠올리며 그녀를 되찾겠다고 호언장담했던 것과 같았다. 결국 재희를 향한 마루의 사랑, 마루에 대한 은기의 사랑은 교통사고라는 파국을 맞았다.

 

 

 

그렇다면 교통사고 후에는 뭐가 달라졌을까. 강마루는 그가 증오했던 한재희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었다. 자신의 욕심을 위해, 타인의 삶을 짓밟고 희생을 아무렇지 않게 소비하는 남자. 그것이 아무리 동생 강초코를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들이었다. 한재희가 아들 서은석에게 태산그룹을 물려주기 위해 타인의 희생을 소비하는 것과 다를 게 없는 인생을 마루는 살고 있었다.

 

그런 마루에게 기억상실증에 걸린 은기가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재희앞에 출소한 마루가 나타난 것 같은 충격이다. 그리고 마루가 탐욕에 찌들어 추락하던 재희를 결국 붙잡아주지 못했던 시간을, 이번엔 은기가 추락하는 마루를 붙잡아주는 시간으로 바뀌었음을 알린다. 명석한 두뇌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강마루가 예전의 한재희의 모습으로 돌려놓는 데에 실패했다면, 교통사고로 뇌가 고장나 수단도, 방법도 뭔지 모르는 순수한 서은기를 통해, 예전의 착한남자 강마루를 되찾아주는 과정이 그려질 것이다.

 

 

 

즉 드라마 ‘착한남자’가 1~9회까지가 강마루가 예전 한재희의 순수함을 되찾아주는 과정의 실패를 담았다면, 10회부터는 서은기가 예전 강마루의 순수함을 되찾아주는 과정을 성패를 담는 셈이다. 각각 해결사를 자처하는 강마루와 서은기는, 포지션은 같지만 접근 방법에서 차이가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는 같지만, ‘잘 생기고 똑똑해 나쁜 남자’ 강마루와 ‘기억상실증으로 무식해진 순수한 여자’ 서은기의 ‘접근방법’의 차이.

 

현시점에서 드라마 ‘착한남자’는 결말에 초점을 맞추고 복선찾아 삼만리를 하기 보단,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 갈 필요가 있다. 강마루와 서은기는 ‘사랑’이란 같은 목적을 향해, 어떤 다른 수단과 과정을 밟고 있는가를 비교했을 때, 제작진이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에게 전달하고픈 내용과 메세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조급하게 결말을, 끝을 바라보기 보단, ‘착한남자’가 어떤 내용을 품고 진행되어 왔는지 여유를 가지고 돌아볼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