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남자 문채원, 다신 못볼 애절 연기의 증거
비극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사랑했던 남녀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이별을 결심한 것은. 10일 방송된 수목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 9회에서, 서은기(문채원)는 강마루(송중기)의 차를 향해 돌진했고, 강마루는 피하지 않았다. 어두운 터널은 그들의 진심을 읽을 수 있는 마지막 통로 역할을 했고, 번쩍이는 찰나였겠지만, 서은기는 느꼈을 지도 모르겠다. ‘내가 알고 있는 강마루는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심을 읽은 대가치곤, 보이는 결과가 너무 참혹했다. 교통사고로 마루와 은기는 중태에 빠졌다. 운 좋게 목숨은 건졌다. 하지만 1년 뒤 재회한 두 사람은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남자는 뜨겁던 심장이 멈췄고 여자는 차갑던 뇌가 멈췄다. 그래서 그 둘이 다시 만나게 됐는지도, 만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상대방을 통해, 내안에 멈춰버린 심장속에, 뇌속에 ‘사랑’이란 숨을 끊임없이 불어넣기 위해서.
강마루에게 묻는다. 은기와 함께 한 첫 번째 여행지 바닷가에서, 굳이 그녀에게 거짓말을 해야 했는지 말이다. 마루는 은기에게 말했다. “한재희(박시연)를 사랑했다.”고. 그래서 의도적으로 은기에게 접근했고, 은기를 이용했다고, 거짓말이 아니었다. 사실이다. 그 다음이 문제였다.
은기는 과거에 있었던 마루와 재희와의 관계는,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다고 대꾸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중요하고, 내가 강마루를 사랑하는 이 감정에 충실하기 위해서라도 당신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돌직구를 던졌다. 은기는 위기의식을 느꼈던 것일테다. 마루의 첫사랑, 한재희가 가진 선점효과를 깨부수기 위해서, 후발주자 은기는 더 강하고 적극적으로 마루를 원한다고 말해야 했다.
그만큼 서은기에겐 남자 홀리는 재주가 남다른 한재희라는 그늘이 두려웠고, 죽을 만큼 놓치기 싫은 강마루의 사랑이 절실했다. 그런 은기에게 마루의 대답은, 거짓말은 잔인했다. “내가 갖고 싶은 사람은 한재희지, 서은기가 아니니까.” 그래도 내가 포기가 안 된다면, 빈털터리 서은기가 아닌 태산그룹 후계자 서은기로 날 꼬셔보라는 치욕적인 부가서비스 멘트까지 날렸다.
이 말이 과연 마루의 진심일까, 아닐까. 서은기는 혼란스러웠다. 사람은 혼란스러워 질수록 확인하고 싶어진다. 했던 말을 자꾸 되물으며 내가 원하는 답을 들려주길 기대한다. 나에게 접근해 했던 말과 행동에 정말 순수한 마음은 단 한번도 없었을까. 마루는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강마루 이 남자, 시청자까지 속이고 있었다.) 그리고 서은기는 폭발했다. “너 돌대가리니?” 자신이 미친 여자처럼 모든 걸 버리고 강마루를 사랑했던 건, 당신에게서 진심을 읽었기 때문이라고 항변했다.
그 순간 서은기는 마루를 부정하고 있었다. 마루가 거짓말을 한다고 느꼈다. 자신이 마루에게 느꼈던 게 유일한 진실이라고. 그런데 마루가 자꾸 아니라고 뒷걸음질 친다. 나는 ‘맞다’ 상대방은 ‘아니다’, 답답하고 미칠 지경이 된다. 피가 거꾸로 솟은 듯이, 핏대가 빠짝 선 문채원의 연기는, 당시 서은기라는 캐릭터가 느끼고 있던 뜨거운 감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드라마 ‘착한남자’에선 다시 못 볼 문채원의 명품 핏대였고, 애절한 연기였다.
그러나 강마루(송중기)가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녹여 낸, 차가운 눈빛과 냉정한 말투에, 사랑을 확인하고자 뜨겁게 요동치던 서은기(문채원)의 핏대는 자취를 감추었고, 좌절 한걸음, 절망 한걸음으로 쓸쓸하게 돌아서야 했다. 은기의 뒷모습조차 바라볼 수 없었던 마루는 홀로 아픔을 곱씹었다. 더불어 한재희와 엮이지 않는 세상, 마루가 가자는 곳이라면 세상 어디든 따라 가겠다며, 착한 남자 마루를 향한 착한 여자 은기의 마지막 목소리는 몰아치는 파도속에 묻혀버렸다.
강마루는 왜 서은기에게 거짓말을 하고 상처를 주었을까. 한재희와 엮이지 않는 세상은 찾을 수 없기 때문일까. 그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마루라는 남자만 놓고 접근하면, 착해서다. 순수해서다. 미안해서다. 그래서 자격을 물었던 셈이다. 내가 과연 서은기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결론은 강마루는 자격없다. 자격없어 미안하다. 강마루표 ‘미안하다, 사랑한다’가 된 셈이다. 하지만 마루는 '미안하다.'는 말조차 은기에게 꺼내지 못했다.
강마루와 서은기는 시작부터 잘못된 만남이다. ‘한재희’라는 매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기는 박변호사(이상엽)로부터 아버지 서정규(김영철)회장의 사망소식을 전해 듣고 핸들을 꺾었다. 모든 불행의 씨앗 ‘한재희’. 은기가 재희를 피해 살아갈 수 있는 비상구가 보이지 않는다. 결국 한재희가 없는 세상으로 서은기는 돌진했던 것이다. 그리고 강마루는 ‘미안하다’는 말 대신 서은기의 결정에 따랐다. 은기의 차량을 끝내 피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교통사고가 있고 나서, 그들은 ‘한재희’가 없는 세상에 도착했다. 마루는 재희가 태산그룹 오너가 되든, 뭐가 되든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다. 그저 사람에 대한 미움으로 자신의 목을 서서히 조르고 있었다. 은기는 사고로 뇌손상을 입었고 기억을 잃었다. 은기가 기억할 수 있는 건, 오직 강마루. 강마루를 사랑했던 은기의 가슴이 그를 기억한다.
교통사고 이후, 마루와 은기가 1년 만에 재회하면서 드라마 ‘착한남자’는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어쩌면 바닷가에서 서은기가 강마루에게 원했던 것을 되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재희가 없는 세상에서 찾을 수 있을까. 결국 한재희는 마루와 은기에게 도피가 아니라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그래서 한재희가 있는 세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상처투성의 마루와 은기에겐, 결코 쉽지 않은 여행이 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