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남자 박시연-문채원, PPL에 묻힌 진짜 신발
드라마는 픽션이다. 거짓말이다. 하지만 시청자는 드라마에게 묻는다. 주인공이, 상황이, 브라운관을 채우는 일련의 과정들이, ‘과연 현실적인가, 비현실적인가.’ 개연성이 있는가, 없는가. 왜냐하면 드라마는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을 왜곡하고 외면한 드라마는, 결국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없다. 즉 드라마라는 건, ‘허구’라는 고무에 ‘현실’이란 입김을 불어넣어 ‘재미’라는 풍선을 부풀리는 과정이다.
드라마에서 현실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방법으로 ‘의식주’를 꼽는다. 의식주를 보면, 시대를 알 수 있고, 인물들이 처한 환경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의식주를 통해 인물들의 성격이 표출된다. 드라마에서 장소와 소품 등은 극에 리얼리티를 불어넣는 핵심이 된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드라마가 딜레마에 빠졌다. 바로 간접광고 'PPL'때문이다. 드라마의 'PPL'은 늘 논란을 부르곤 한다.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히려 착한남자는 'PPL'로 제대로 직격탄을 맞았다. 드라마 방영 중간에 원제목인 ‘차칸남자’를 내리고 ‘착한남자’로 바꿔야 했다. ‘차칸남자’가 한글을 파괴한 표현이란 게 컸지만, 이에 못지않게 ‘차칸남자’라는 제목과 주인공 ‘강마루’가 특정제품을 연상켰다는 비판도 거들었다. 그리고 제목의 여파는 여전히 유효해, ‘과연 마루가 치킨을 뜯을까?’라는 묘한 궁금증을 시청자에게 전이시켰다.
드라마 ‘착한남자’ 7회에서, ‘한재희(박시연)가 손수 도시락을 싸지 않고 치킨을 사들고 강마루(송중기)의 집을 찾았다면?’ 8회에서, ‘서은기(문채원)를 집안으로 데려 온 마루가 당장 먹을 게 없다면서 밖에 나가 치킨체인점을 찾았다면?’ 드라마를 지켜보던 시청자의 감정선이 일순간에 붕괴되고, 다시 몰입하는 데 방해가 됐을 것이다. 먹거리가 많은데, 굳이 치킨을 고집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괜한 논란에 극의 퀄리티만 죽이는 자충수를 제작진도 두지 않았다.
대신 문채원의 핸드폰과 아웃도어룩이 지나친 'PPL'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현대인의 필수품인 핸드폰은 'PPL'을 떠나 현대극에선 노출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통화목적이외로 사진촬영 등 핸드폰의 다양한 기능들은, 드라마 속 등장인물이상으로 시청자도 애용한다. 핸드폰과 관련해 지나칠 정도로 뜬금없는 'PPL'은 해롭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PPL'과 연계시켜 극을 바라보는 건, 불필요한 감정소모에 가깝고 비판은 때때로 무리가 따른다.
착한남자 7,8회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도 'PPL' 논란속에 묻히고 만, 제작진이 ‘신발’과 관련해 표현한 상징적인 의미였다. 단순히 문채원의 아웃도어룩을 강조하고 해당브랜드를 홍보하고자, 강마루가 아웃도어매장을 찾아가 서은기의 점퍼와 신발을 구입한 게 아니었다. 극중 캐릭터를 가장 효과적이고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착한남자 7회에서 서은기는 집을 몰래 빠져나왔다. 그리고 빗속을 뚫고 ‘맨발’로 강마루의 찾아가 사랑을 고백했다. 은기는 ‘신발(구두)’을 버렸다. 매일 신어야 하는 ‘신발(구두)’이 품는 상징이란 자신을 구속하는 것들, 신원이고 이력이며, 욕망이고 자아고 정체성이다. 즉 서은기의 '맨발'은, 사랑하는 마루를 얻기 위해 태산그룹 서회장(김영철)의 딸로 살아온 인생, 배경을 버린 것이었고, 사랑고백은 욕망의 발로지만 순수이상으로 혼란이 내재된 상태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런 은기에게 마루가 새신발을 사준 것이다. 은기는 마루가 사준 신발을 신고 좋아했지만, 한재희 자작극에 말려 마루를 오해했고 실망한 뒤 돌아갔다. 하지만 이내 마루를 불러낸다. 둘이서 첫 번째 여행을 떠나기로 했던 바닷가로. 바닷가에서 재회한 마루와 은기. 두 사람은 백사장에 나란히 앉았다. 그 때 은기는 마루가 새로 사준 신발을 신고 있었다. 은기가 마루에게 구속됨을 의미한다. 마루의 정체성이 은기에게 옮겨간 것이다. 은기와 마루는 그렇게 닮아가고 있었다. 그들이 욕망을 쫓는다면, 그것은 서로에 대한 사랑이 될 것임을 예고한다.
서은기의 ‘맨발에 이은 새신발’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장면이, ‘슬리퍼 한 짝’밖에 신고 있지 않던 한재희였다. 재희가 부른 별장으로 찾아간 마루는 재희의 발을 보았다. 상처투성으로 슬리퍼 한 짝만 신고 있었던 재희. 그 모습에 마루의 시간은 재희를 처음 만났던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누군가에게 쫓겨 마루의 집안으로 달려 들어온 여고생 재희. 그 당시 재희는 지금처럼 상처입은 얼굴에 단화는 한 짝만 신고 있었다. 두 손에 남은 단화 한 짝을 들고서.
그렇게 재희는 상처입은 신데렐라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마루는 재희에게 왕자가 되어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재희의 욕망을 채우기엔 마루왕자의 사랑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였음을 깨닫는다. 재희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리고 재희에게 배신당한 지금도, 여전히 ‘신발’ 한 짝의 재희는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왕자님을 찾고 있었다. 그래서 마루는 재희를 놓아줄 수 있었다. 재희에 대한 배신감이상으로, 스스로 한계를 뼈저리게 절감한 자괴감 때문이다. 그래서 재희를 포기하고 돌아서는 마루의 눈물이 뜨겁도록 아픈 것이다.
강마루에게 두 여자가 있다. 한 여자(한재희)는 마루를 만났지만 자아가 변하지 않았고, 다른 한 여자(서은기)는 마루를 만나 자아가 변했다. 이 모든 과정을 제작진은 ‘신발’을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제작진이 얼마나 장면하나하나에 공을 들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탁월한 연출과 묘사, 상징성마저, 문채원이 신은 신발브랜드는 무엇인가라는 홍수속에 휩쓸려 버린 것 같아 씁쓸하다.
드라마속에 제품이나 브랜드가 종종 과하게 노출될 때, 'PPL'이란 이름아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드라마틱한 과정을 표현하기 위해 노출되는 경우도 많다. 때문에 인상 깊게 남아 곱씹어 볼 대목조차, 제품이나 브랜드의 껍데기에 묻힐 땐 안타깝다. 드라마 제작현실을 감안할 때, ‘착한남자’만 PPL에서 자유롭길 바라는 건 욕심이다. 드라마가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라면, 열심히 현실 반영중인 'PPL'을, 가끔은 못본 척 눈감아 줄 필요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