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남자 송중기, 눈을 왜 그렇게 만들었을까
3일 방송된 수목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 7회에서, 서은기(문채원)가 강마루(송중기)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은기는 말했다. 마루가 해주었던 키스도 처음이었고. 남자에게 사랑고백을 듣고 가슴 떨린 적도 처음이었다고, 그래서 당신을 너무 사랑하게 됐으며, 그 감정이 너무 좋아서 매일같이 느끼고 싶다고. 남들처럼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그렇게 남은 평생을 함께 자고, 함께 눈뜨고, 함께 늙어가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해 본 적 없는 여자(서은기)가, 누군가(한재희)를 그토록 사랑해서 밑바닥까지 추락한 남자(강마루)에게 묻고 있었다. 지금 내가 본능적으로 느끼는 이 감정이, 이 사랑이, 순간일 수 있고 혼자만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갈 수 있게 강마루 당신이 길을 터주고 빛이 돼줄 수 있겠냐고 말이다. ‘불가능하다’는 대답이 나올까 조마조마 두려워 떨고 있는 서은기를, 강마루는 ‘가능하다’는 대답대신 조심스럽게 안아주었다.
강마루는 사랑한다는 말, 사랑한다는 약속이란 게,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알고 있다. 순수한 사랑을 지키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서은기가 강마루에게 느꼈던 사랑을, 이미 강마루는 한재희(박시연)를 통해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루는 은기에게 확답을 해줄 수가 없다. 결정적으로 당신(서은기)이 내 실체를 알게 된다면, 지금 한재희에 대한 애증으로 내가 그녀를 벼랑끝으로 내몰듯이, 결국엔 당신도 나를 벼랑끝에 세울테니까.
하지만 마루는 모르고 있었다. 서은기가 강마루의 실체에 대해 알고도 그에게 올인하며 피끓는 사랑을 고백중이란 것을. 은기는 이미 박준하(이상엽)변호사로부터 강마루와 한재희가 과거 연인이었다는 것부터, 마루가 살인죄로 5년간 교도소에서 복역한 사실까지 보고받았다. 처음부터 마루가 은기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은기는 마루를 사랑하고 있다. 마루의 과거가 아니라 마루의 현재를 바라보며 사랑하고 있다.
은기의 본능적 사랑이 마루의 과거와 잘못을 이기고, 내리는 빗물이 은기와 마루를 원초적이고 순수한 상태로 돌려놓는다. 타락천사 마루가 수호천사가 된 은기를 통해 온전히 구원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추억이란, 기억이란 건 고약한 것. 은기의 사랑고백을 통해 치유될 수 있었던 마루의 눈앞에, 우산을 들고 서 있는 한재희의 모습이 들어온다. 착한남자 강마루가 악녀의 유혹을 온전히 떨쳐내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착한남자 7회의 마지막 장면에서 강마루의 심리는 어떻게 설명될까. 제작진은 마루의 ‘눈’속에 비밀의 해답을 담아 두었다. 본능을 속이고 마루에게 이별을 이야기하고 괴로워하던 서은기는 우산도 없이 맨발로 빗속을 뚫고 강마루의 집을 찾았다. 반면 오빠 한재식(양익준)의 전화를 받고, 마루에 대한 오해를 자책한 재희는, 진한 립스틱에 온갖 몸치장을 하고선, 도시락에 우산을 들고서 마루앞에 나타났다. 마루를 찾아가는 서은기-한재희의 모습은 절묘한 대비를 낳는다.
사랑이란 본능에 충실한 여자 맨발의 서은기는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내려놓았다. 오직 사랑을 얻기 위해. 그리고 은기와 마루는 우산도 없이 비를 맞았다. 빗물에 노출됨으로써, 지난 날 거짓으로 물든 과오를 씻어내는 동시에 앞으로 역경도 함께 감내해 나갈 두 사람을 예고한다. 반면 화장으로 내면을 숨기고 우산을 들고 서 있던 한재희는, 지난 과오에 대한 반성과 그에 따른 시련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런 서은기-한재희의 본능은 고스란히 강마루의 눈속에 담겨진다.
은기가 마루의 집 대문을 두드리고 잠시 뒤 마루가 나왔을 때, 사실 깜짝 놀랐다. 마루의 한쪽 눈이 심하게 멍들고 뭉개졌기 때문이다. 마치 하이드의 모습을 한 지킬박사를 보는 듯 했다. 아무리 재희가 보낸 깡패들에게 마루가 처참하게 밟혔다한들, 분장이 너무 심했다 싶은 생각이 앞설 정도로, 마루의 망가진 한 쪽 눈은 강렬한 이미지를 낳았다. 그렇다면 왜 제작진은 꽃미남 남자주인공 송중기의 한쪽 눈을 심하게 망가뜨렸을까.
앞서 언급한 대로, 뚜렷한 대비를 낳는 강마루의 짝눈 속에서, 현재 마루의 심리뿐 아니라, 은기-재희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한쪽 눈으로만 보게 되면 멀고 가까운 것을 판단하는 원근감이 떨어지고, 물체를 입체적으로 보지 못한다. 마루의 일그러진 한쪽 눈은 일시적이지만,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일그러진 한 쪽 눈은 멈춘 것이다, 정지된 것이다. 상대방을 온전히 읽어낼 수 없다.
눈이란 건 많은 걸 담는다. 과거를 담고 현재를 담는다. 당장 보이는 것 뿐 아니라, 예전에 보았던 것도 담는다. 기억을 담는다. 그래서 마루의 눈이 재희를 향할 때면, 언제나 증오와 안타까움이 교차한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쪽 눈이 부상을 당하면서. 상징적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원근감이 사라졌다. 부상으로 한쪽 눈이 기능을 상실하면서, 과거를 읽지 못하는 대신 현재를 직시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마루는 은기의 진심어린 사랑고백을 투명하게 읽을 수 있다. 그녀를 이용하고 상처를 주었던 자신을 반성할 수 있다. 바로 서은기를 통해 현재 느끼는 감정에 충실할 수 있다. 문제는 한재희를 바라보는 시야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우산을 쓴 한재희를 본 마루의 눈빛은 은기를 바라볼 때에 따뜻함과 순수함을 잃고 차갑고 사납게 변해간다.
무슨 악마의 유혹을 하겠다고 날 찾아왔을까. 재희의 의도는 마루를 오해한 미안함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마루는 그녀의 진심은 읽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마루는 은기를 재희에게서 보호하려는 듯, 더욱 강하게 안아준다. 과거 한재희를 사랑했던 아름다운 기억은 일시적으로 사라지고, 현재 나를 배신하고 여러 사람의 인생을 망치고 있는 여자 한재희가 뚜렷이 각인된다. 그렇게 부상으로 짝눈이 된 마루는, 과거 그리고 기억에 대한 원근감을 잃고 만다.
강마루는 서은기를 통해 예전의 자신을 찾아가고 있었다. 은기가 자신을 용서하고 구원해줄 수 있다면, 재희를 향한 애증의 발로인 복수도 접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은기를 통해 상처를 치유받기 시작한 그 순간, 재희가 마루의 눈앞에 서 있었다. 마루의 짝눈은 과거 사랑스럽던 재희를 기억하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은기 사랑고백 후에 등장한 재희는 마루의 증오심을 키우는 기폭제가 되고 만다.
그래서 강마루의 일그러진 한쪽 눈은 시청자에게 강렬한 이미지이상의 효과와 의미를 갖는다. 기억의 축이 일시적으로 붕괴됨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당시 느꼈던 착한남자 강마루의 심리를, 제작진은 마루의 망가진 눈을 통해 탁월하게 표현했다. 재밌는 건, 강마루가 한재희와의 좋았던 과거의 기억조차 떠올리지 못하고 왜곡하도록 만든 사람이 한재희라는 사실이다. 한재희가 깡패들을 동원해 마루의 눈을 그 지경으로 만들었으니, 인과응보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은기-마루-재희 세사람의 어긋난 운명이 가져올 파국은 이제 막 시작을 알렸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