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및 드라마

마의, 무더기 옥에티와 아역들의 필요성

바람을가르다 2012. 10. 3. 09:41

 

 

 

 

 

 

 

 

 

아이들의 호기심이 사건을 키웠다. 창사 51주년 특별기획 MBC 새 월화드라마 ‘마의’2회에서는 아역연기자들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진행됐다. 마의 2회의 시작은 드라마가 자주 애용하는 로또 아이템 ‘아이 바꿔치기’. 친구 이명환(손창민)의 배신으로 역모죄를 뒤집어 쓴 강도준(전노민)은 참수형을 당했다. 임신중이던 도준의 처(장영남)가 낳은 자식 또한, 아들일 경우 죽음을 면하기 힘든 상황이었고, 딸이라면 노비의 신분으로 죽음을 면할 수 있는 50%의 룰렛.

 

모든 시청자가 예상하듯 강도준의 아이는 아들이다. 아들임을 확인한 도준의 처는 돌연 심장마비가 왔는지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도준의 아이를 받은 절친 장인주(유선)는 경악했다. 어떻게든 도준의 아이를 살려야 한다. 그러나 장인주는 묘책을 강구할 겨를이 없었다. 이미 집앞에는 관군이 들이닥쳐 아이의 목숨을 회수하고자 한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도준에게 도움을 받있던 석구(박혁권)가 등장한다.

 

 

 

강도준이 임신중독증을 앓았던 석구의 아내는 살려내지 못했지만, 뱃속에 딸아이는 살려냈기 때문이다. 석구는 도준의 은혜를 외면하지 못하고, 자신의 딸(강지년-이요원)과 도준의 아들(백광현-조승우)을 바꿔치기 한다. 관군의 눈을 속인 석구덕에 도준의 아들 백광현은 목숨을 건졌을 뿐 아니라, 석구의 아들로 살아갈 수 있었다. 오히려 멀쩡하게 살아있는 아버지의 존재도 모른 체, 노비로 살아야 하는 석구의 딸 강지년이 안타깝게 됐을 뿐.

 

호기심 많은 아이 백광현(안도규)은 외딴 섬을 벗어나 늘 도성에 가는 것을 꿈꾼다. 그러나 자신과 광현의 신분을 최대한 감추고 살아야하는 석구는, 도성에 대한 광현의 호기심이 늘 좌불안석이다. 언젠가는 백광현에게 친부인 강도준의 억울한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줘야 하겠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대신 광현에게 글공부를 시키는 등의 헌신적인 뒷바라지로 훗날을 기약한다.

 

 

하지만 아버지 석구의 깊은 뜻을 어린 광현이 눈치챌 리 만무하다. 결국 광현은 글공부 스승(맹상훈)을 쫓아, 아버지 석구 몰래 도성에 입성한다. 그리고 도성에서 거렁패 왕초로 살아가는 영달 강지년(노정의)을 만나게 된다. 그렇게 ‘아이 바꿔치기’로 엇갈린 인생의 파도속에 내던져진 백광현-강지년은, 12년 만에 운명적으로 재회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도 모른 체.

 

한편 효종의 총애뿐 아니라, 의생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내의원 이명환(손창민)은 평탄한 삶속에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친구 강도준을 매정하게 배신했던 과거의 기억은 12년이란 세월속에 가라앉은 듯 보였다. 그 날카롭고 아픈 기억을 효종이 수면위로 끌어 올린다. 소현세자(정겨운)의 죽음을 재조사하라는 어명을 내렸기 때문이다. 평온했던 이명환의 낯빛이 어둡게 변하고 불안감이 감돌기 시작한다.

 

 

 

소현세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독침을 직접 놓았던 자가 이명환이다. 다행이 소현세자 시해를 지시했던 인조의 후궁 조소용(서현진)과 김자정은 죽었다. 하지만 모든 과정을 아는 이형익이 남았다. 이명환의 입장에서 소현세자 시해사건을 완벽하게 은폐하기 위해선, 이형익이 사라져 주는 게 제일 간명하고 확실하다. 때문에 이명환은 수하들을 시켜 이형익을 납치했고, 12년 전에 소현세자를 죽일 때처럼 독침을 놓는 방식으로 이형익을 살해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광경을 몰래 훔쳐 본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어린 백광현과 강지년이다. 이명환은 소현세자 시해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이형익을 독살했지만, 오히려 은폐된 사건을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이명환에 의한 이형익의 독살’이 백광현-강지년에게 발각된 것이다. 즉 이명환에게 위협이 될 존재가 이형익에서, 백광현-강지년으로 넘어감을 보여준다.

 

 

 

동시에 소현세자와 강도준의 억울한 죽음에 관해 친구이자 명환의 연인이었던 장인주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반면, 도준의 자식인 백광현에게 훗날 관련 사건을 풀 수 있는 단초를 쥐어줌으로써, 극의 향후 전개방향을 뚜렷하게 예고한다. 12년 전 이명환이 소현세자를 살해한 결과로 엇갈린 운명을 짊어진 백광현-강지년에겐, 12년 후 독살 당한 이형익이 소현세자의 아바타역할을 한 셈이어서, 장면 자체도 인상적일 뿐 아니라 내포한 의미가 매우 크다.

 

다만 인상적인 장면속에서도 옥에 티는 있었다. 이명환이 이형익을 독살하기 전, 이형익의 죽음과 동시에 은폐해야할 사건의 비밀을 수하 네명이 들었던 점이다. 비밀이란 혼자 간직해야 한다던 이명환이, 왜 수하 네명을 옆에서 다 듣게 내버려뒀을까. 납치된 이형익은 밧줄로 포박된 상태라, 이명환이 독침을 놓아도 반항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비밀을 누설하기 전에 “너희들(수하들)은 나가 있어.” 이 한마디가 그렇게 생각하기 힘들었을까.

 

 

 

이명환이 이형익을 독살하기 전에 했던 비밀스런 과거 이야기는, 어차피 몰래 숨어서 들었던 ‘백광현-강지년’에게 필요했던 것이지, 수하 네명이 함께 들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악의 포지션에서 매사 완벽할 정도로 철두철미함을 보여야 하는 이명환의 캐릭터가, 느슨하고 조심성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주고 말았다. 향후 전개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인상적인 장면으로 손색없었지만, 비밀 누설과정에 무더기로 서 있던 네명의 수하는 ‘옥에 티’로 보일 수밖에 없다.

 

덧붙여 생각할 대목은, 아역연기자들에 대한 시청자의 만족도에 있다. 아역의 등장이 오히려 옥에티로 보일 정도로 임팩트가 약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의 2회를 보고, ‘굳이 아역이 필요했을까.’라는 시청자도 많았을 것이다. 물론 12년이 아니라, 20년 정도 흐른 상태에서 아역들이 아닌, 조승우-이요원이 2회부터 등장했다면 재미와 긴장감이 더욱 느꼈을 테다. 하지만 아역이 등장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명환이 이형익을 독살하는 장면에 있었다.

 

 

 

‘왜 이명환이란 사람이 이형익을 독살했을까?’라는 주인공의 의문이 당분간 수면아래로 가라앉기 위해선 성인연기자인 조승우-이요원이 아닌, 아역들이 필요하다. 이형익의 죽음을 접한 백광현-강지년이, 성인이 아닌 어린 아이들이기 때문에 당장은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치밀하게 접근할 수 없다. 살인사건을 목격했다는 사실만으로 어른들에게 쫓기는, 본인들의 안위를 챙기기 바쁜 어린 아이들일 뿐이다.

 

대신 훗날 백광현(조승우)-강지년(이요원)이 성인이 되어, 이명환과 재회했을 때, 과거 기억을 떠올리고, 이형익의 죽음과 이명환이란 사람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차근차근 치밀하게 접근할 수 있는 단초가 된다. 그 때는 이명환도 권력의 정점에서 훨씬 강력한 악역으로 그려질 것이다. 드라마 마의 16부작이라면 모를까, 50부작이기에 완급조절은 필수다. 무엇보다 백광현과 이명환이 치열하게 부딪히는 의학이 먼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터져 나올 소현세자의 죽음과 주인공의 출생의 비밀 등은 스토리가 어느 정도 진행돼야 떠오를 에피소드. 그 단초를 위해, 극적 재미와 캐릭터의 숙성 과정을 위해 아역들이 필요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