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및 드라마

메이퀸 한지혜-재희, 호텔에서의 하룻밤 왜 필요했나

바람을가르다 2012. 10. 1. 09:52

 

 

 

 

 

 

 

 

 

주말드라마 ‘메이퀸’의 천해주(한지혜)는 아무리 힘들고 지치고 외로워도, 건강한 웃음을 잃지 않으며 내일의 희망을 품고 사는 긍정의 아이콘으로 그려진다. 캔디 천해주는 그래서 드라마의 여주인공스럽다. 그러나 해주에게도 부족한 게 있고 단점이 있고, 콤플렉스가 있다. 바로 그녀가 희망을 심고 마지막 보루인양 꺼내드는 ‘가족’이다.

 

30일 방송된 메이퀸 14회를 보면서, 과연 천해주에게 가족은 어떤 존재인가를 되묻게 된다. 오빠 천상태(문지윤)라는 사람은, 처남이 된 것도 아닌 될 지도 모르는 박창희(재희)에게 돈을 요구했고, 그 돈으로 차를 구입하는 등 개인 용도로 써버린다. 동생 해주가 물건도 아닌데, 결혼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대가를 요구한 셈이다. 그러고도 일말의 죄책감이나 미안함을 엿볼 수 없다.

 

 

 

여동생 천영주(정혜원)는 어떤가. 나이트클럽 죽순이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오직 돈 많은 남자를 만나서 팔자 고치겠다는 생각뿐이다. 14회에선 장일문(윤종화)과 즉석 만남을 가졌고 호텔까지 따라갔다가, 일문의 지갑에서 수표를 훔쳐 달아났다. 그러나 꽃뱀 코스프레를 했던 영주는 결국 수표추적에 걸려 경찰에 잡혀갔다.

 

천해주에게 오빠 천상태와 여동생 천영주는, 한심함을 넘어 구제불능이고 인간의 밑바닥을 보여준다. 늘 ‘가족’이란 이름아래 실질적인 집안의 가장 해주를 의지하는 것도 모자라, 해주의 발목을 잡고, 해주의 희망을 꺾고 상처를 입힌다. 그럼에도 해주는 그들을 놓을 수가 없다. 외면할 수가 없다. 무슨 잘못을 해도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가족이란 관계때문이다.

 

 

 

그런 천해주가 답답한 건 어쩔 수 없다. 가족의 굴레에서 이제 그만 벗어나라는 박창희(재희)의 말이 이해가 간다. 가족은 잠시 잊고, 우리 둘의 사랑 그리고 행복을 우선 생각하자며 결혼을 재촉하는 창희가 현명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해주는 창희에게 둘의 결혼을 강하게 반대하는 아버지 박기출(김규철)과 화해부터 하라고 종용한다. 창희에게 기출은 ‘아버지고 가족이니까.’라며.

 

가족. 가족. 가족... 천해주는 언제까지 가족 타령만 할 것인가. 박기출의 과거 악행들은 접어두고 라도, 창희를 더욱 스트레스 받게 만드는 건, 해주의 가족 타령이다. 끊임없이 가족을 강조하고 주입시키는 해주때문에 창희는 노이로제에 걸려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다. 이래서는 창희가 해주와 결혼한다고 해도 절대 행복할 수 없을 게 불보듯하다.

 

 


왜 천해주는 입에 올려 봐야 입만 아픈, 문제 투성의 가족들을 박창희에게 매번 강조할까. 가족은 지키고 사랑하고 아껴줘야 하는 존재이기에 앞서, 천해주가 극복해야 할 콤플렉스이기 때문이다. 해주는 가족사랑을 창희에게 전파하고 있지만, 사실 그녀가 말하고 싶은 기저엔, 가족때문에 힘들다는 속내가 담겨 있다. 창희에게 이해해 달라, 도와달라는 말을 하고 있다.

 

천해주는 절대 가족을 버릴 수 없다. 그건 가족이란 보편적 가치뿐 아니라, 해주의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기 때문이다. 해주에게 가족은 문제가 많고 콤플렉스덩어리가 될 수 있지만, 한편으론 그 문제의 가족들을 보듬고 지키며 지금까지 왔다. 실질적인 가장이었던 해주에겐 가족이 일종의 자부심과 자존심이 될 수 있다. 해주는 돈 벌고 가족 뒷바라지 하느라 정작 자신은 공부를 포기하는 희생을 감수했고, 그 대가로 오빠와 동생을 공부시켰던 게 대표적이다.

 

 

 

해주도 학교를 다니지 못한 걸 후회한다. 그래서 새엄마 조달순(금보라)을 원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정형편을 생각해 어쩔 수 없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걸 창희가 봐주길 기대한다. 해주는 검사인 창희와 용접공이었던 자신의 신분차이에 콤플렉스를 느낀다. 박기출의 결혼반대이후 절실하게 느낀다. 그래서 가족은 해주에게 변명이 될 수 있다. 해주가 창희를 욕심 낼 수 있는 것도, 해주가 가족에게 희생한 대가가 있기 때문이다.

 

창희가 공부를 잘 해서 검사라는 성과를 냈다면, 해주는 공장에서 일하면서 가족들이 굶지 않고 공부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성과가 있다. 창희가 자신의 야망을 위해 검사가 된 것처럼, 해주도 자신의 꿈을 가족에게 심었다. 그 결과가 창희와 달리, 해주의 기대와 어긋나게 나타났을 뿐이다. 하지만 창희는 해주의 희생을 온전히 읽지 못한다. 해주의 희생보단 가족에 대한 해주의 집착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메이퀸 14회에서 해주는 창희에게 돈을 받은 오빠 상태에게 크게 실망했다. 그리고 창희를 찾아가 분노했다. 지금껏 가족을 위해 쏟았던 해주의 희생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창희가 알아주길 바랬다. 그러나 창희가 검사로 일하면서 번 돈 몇 푼에, 해주의 희생이 상쇄됨을 느꼈을 때 얼마나 자괴감과 박탈감을 컸겠는가. 그것이 창희에 대한 해주의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콤플렉스는 콤플렉스일 뿐이다. 콤플렉스는 치유가 가능하다. 그리고 해주의 콤플렉스를 창희는 사랑으로 치유하려 했다. 해주는 창희의 강제키스를 처음엔 거부했다. 해주의 콤플렉스를 창희가 온전히 진단하고 이해한 게 아니었고, 여전히 같은 입장을 고수하며 키스로 무마하려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국 해주는 창희의 사랑에 무너지고 만다. 그리고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호텔에서 창희와 하룻밤을 보내면서 해주는 행복해했다. 아마도 해주는 깨달았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는 것을. 호텔방안에서는 창희가 검사인 것도, 자신이 종졸에 용접공출신이란 사실도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더 이상 해주는 창희에게 가족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해주와 창희의 호텔에서 하룻밤은 그래서 더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남녀의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이면엔, 해주의 콤플렉스를 일정부분 치유하기 위한 방편으로 말이다. 또한 해주가 창희와 이별한다고 해도, 해주가 강산(김재원)에 쉽게 마음을 줄 수 없는 계기의 하룻밤이기도 하다. 물론 현재 해주를 짝사랑중인 강산의 시선으로 시청하는 입장에선, 해주와 창희의 하룻밤은 속상하고 불편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