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및 드라마

착한남자 김태훈-이상엽, 착한 송중기가 극복할 여주의 남자는?

바람을가르다 2012. 9. 29. 11:49

 

 

 

수목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에서 ‘착한’이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착하다=선(善)’이다. 그러나 사람의 인성을 뜻하는 ‘착하다’가 ‘절대 선’을 의미하진 않는다. 사회에서 인간은 상대적으로 존립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B가 착한 건 아니지만, A에 비해 B는 착하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렇지만 B가 절대 선이고, 완전무결한 착한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한재희가 아들 서은석에게 착한 엄마라고 해서, 한재희가 착한 여자인가.

 

드라마 착한남자의 앞에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이란 비교 수식어가 존재한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이란 말은 매우 모호하다. 또한 ‘세상 어디에도 없는’=‘절대 선(善)’도 아니다. 단지 세상 어디에도 없을 뿐이다. 착함의 경계선이 없고, 비교대상이 없다. 그렇다면 강마루(강마루)는 착한남자인가. 보편적인 관점에서 과거엔 착한남자였다. 다른 사람에겐 몰라도 한재희(박시연)에겐 분명 착한남자였다. 그러나 재희의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사실을 왜곡한 건 절대 착한 게 아니다. 마루의 착한월드도 그 순간부터 조각나기 시작했다.

 

 

 

드라마가 6회를 방송한 지금, 강마루는 한재희에게 더 이상 착한남자가 아니다. 심지어 재희의 탐욕을 무너뜨리기 위해 서은기(문채원)를 자신이 소유한 물건처럼 이용한다. 마루의 계획에 동의한 적 없는 은기를 이용한다. 강마루는 한재희에게도, 서은기에게도 절대 착한남자가 아니다. 그래서 시청자는 세상 어디에나 있을 법한 드라마 ‘착한남자’ 속 인물들과, 선악의 경계가 허물어진 주인공 착한남자 강마루를 비교할 수밖에 없다.

 

드라마 착한남자의 제작진은 친절하게도 과거와 지금의 강마루를 둘로 쪼개어, 한 명은 한재희에게, 한 명의 서은기에게 심어놓았다. 바로 태산그룹의 변호사 안민영(김태훈)과 박준하(이상엽)이다.

 

 

 

안변호사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한재희를 돕는다. 그것이 재희를 향한 사랑이든, 재희를 통해 태산그룹을 손에 쥐고 싶은 욕구이든. 때문에 재희에게 헌신중인 안변호사는 재희에겐 착한 남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처럼 보필했던 태산그룹 서정규(김영철)회장을 속인다. 서회장의 신뢰를 잔인하게 배신했다. 마치 마루에게 모든 걸 올인한 은기를, 자신의 목적에 의해 수단으로 악용하고 차갑게 배신한 강마루처럼.

 

반면 박변호사는 목적에 대한 결과물이 자신에게 귀속되지 않는다. 자신의 성과물은 고스란히 서은기의 손에 쥐어진다. 서은기를 향한 맹목적인 짝사랑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사랑은 순수하다. 자신의 결과물을 가지고 서은기와 딜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서은기가 행복하길 바란다. 과거 한재희를 사랑했던 강마루보다 덜 무모할지는 모르나, 조금은 더 착하고, 조금은 더 순수한 남자가 박준하변호사일 것이다. 적어도 서은기를 대하는 박변호사의 태도만큼은 말이다.

 

 

 

한재희를 돕는 타락천사 안민영변호사와 서은기를 돕는 수호천사 박준하변호사사이에서,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 강마루의 모호함이 조금씩 지워진다. 강마루는 안변호사도, 박변호사에도 속하지 않지만, 적당히 자신이 투영된 그들 사이 어디쯤에는, 강마루표 착한남자가 존재할 것이란 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악이란 건 폐쇄적일 수밖에 없다. 나눌 것이 적고 숨길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변호사는 묵직하고 진중하되 딱딱하다. 마음과 생각을 표현하는 것도, 차가운 비즈니스의 향기가 묻어난다. 심지어 사랑하는 재희를 대할 때조차 말이다. 선이란 건 개방적일 때 빛난다. 나눌 게 많고 숨길 게 적다. 그래서 박변호사는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한다. 부드럽고 여유가 있다. 단지 은기에 대한 짝사랑을 마음 한켠에 묻고 따뜻한 친오빠처럼 다가간다.

 

 

 

여기서 강마루와의 차이점이 보다 구체화된다. 한재희-서은기에게, 안민영-박준하는 ‘착한 남자’이지만 ‘사랑하는 남자’는 아니다. 그래서 여주인공의 변호사들에 비해 강마루는 확장성을 가진다. 바로 착하다가 아닌 사랑이다. 사랑을 접근하는 방식, 쟁취하려는 욕구이다. 마루에게 사랑은 목적이고, 수단도 사랑이다. 그리고 강마루는 알고 있다. ‘착하다’가 인간에게 얼마나 무의미할 수 있는 것인지. 사랑하는 이성이 생기고, 그 사람에게 듣고 싶고 결국 들어야만 채워지는 건, ‘당신은 착하다’가 아니라 ‘당신을 사랑한다’라는 말인 것을.

 

돌이켜 강마루가 원래 착한 남자였을까. 보편적으로 일컫는 착한 남자. 알 수가 없다. 시청자가 알고 있는 건, 마루가 재희를 처음 만났을 때다. 재희를 만나기 전에 마루가 어떤 남자였는지는 알 수 없다. 마루는 사랑하는 여자 때문에, 동생 강초코(이유비)가 응급실에 가야 할 정도로 아픈데도 내팽개치고 재희를 찾아갔고, 살인죄까지 뒤집어쓴다. 그 상황만 놓고 보면 나쁜 오빠였다. 재희 손에 죽은 남자에게 마루는 나쁜 남자였다. 즉 마루가 재희를 사랑해서 그녀에겐 착한남자로 기억될 진 몰라도,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착하다’의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결국 '착하다'를 극복할 수 있는 건 '사랑'이다.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가 궁극적으로 얘기하고 싶은 건, ‘착하다’가 아니라 ‘사랑스럽다’가 맞을 것이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사랑스러운’ 남자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착하다’로 접근하면, 현재의 강마루는 박준하를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으로 접근하면, 강마루는 서은기에게, 박준하가 절대 줄 수 없는 사랑을 줄 수 있다. 사랑했던 한재희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걸 포기했던 것처럼, 서은기를 위해서도 강마루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사랑을 보여줄 지 모른다. 그래서 수호천사와 타락천사를 오가며 비틀거리는 강마루의 선택을 주목하는 것이다. 착한남자가 아니라, 얼마나 사랑스러운 남자로 기억될 지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