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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승장구 손연재, CF광고논란에 직격탄 날린 헝그리정신

바람을가르다 2012. 9. 26. 12:17

 

 

 

영화 ‘넘버3’에서 조폭 두목으로 나온 송강호가, 오늘도 또 자장면이냐면서 불만을 표하는 제자들에게 일장연설을 시작한다. 요즘 애들은 헝그리정신이 없다. 그러면서 거론되는 게 현정화와 임춘애다. 송강호는 헝그리정신을 얘기하면서, 하루 세끼 라면으로 배를 채운 86 아시안게임 육상 3관왕 임춘애를, 88올림픽 탁구여자복식 금메달리스트 현정화로 잘못 알고 있었고, 제자중에 한 명이 현정화가 아니라 임춘애라고 사실관계를 바로 잡았다. 다음은 어떤 장면이 이어졌을까.

 

조폭 두목 송강호는 자신의 무지함을 지적한 제자를 사정없이 두들겨 팬다. 그리고 몹시 흥분해서 말한다. “내가 현정화면, 현정화야!” 영화 본 관객들은 이 장면에서 웃음을 터트린다. 왜 일까. 풍자가 깃들여 있기 때문이다. 두목 송강호가 무식한 것도 일조했지만, 무엇보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헝그리정신 강요하는가?’라는 풍자에 있다.

 

눈여겨 볼 대목은, 이러한 ‘헝그리정신’을 풍자한 ‘넘버3’가 1997년도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 주변에선 ‘헝그리정신’을 강요할 때가 많다는 사실이다. 특히 스포츠, 운동선수를 바라보는 시각에선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국민들의 기대에 충족하지 못하는 성적을 올린 종목이나 선수들에게 사람들은 말한다. “배가 불렀네. 까여도 할 말 없다. 요즘 운동하는 애들은 헝그리정신이 없어.” 넘버3의 송강호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영화 ‘넘버3’가 나온 97년이나, 그 이전과 비교해, 현재 대한민국 스포츠는 엄청난 성과와 발전을 이루었다는 사실이다.

 

헝그리정신과 거리가 먼, 대표적인 배부른 운동으로 지목되고 비판받던 한국축구는 2002년엔 월드컵을 개최했을 뿐 아니라 4강 신화를 써내렸고, 2010년 남아공에선 월드컵 원정 첫 16강, 2012년 런던올림픽에선 동메달이란 쾌거를 이뤄냈다. 한 해 관중 700만 돌파를 눈앞에 둔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 야구는 어떤가. WBC월드베이스볼 클래식 준우승,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등 눈부신 성장을 이뤄냈다.

 

뿐만 아니라 아시아선수가 제패하기 힘들다던 수영 자유형에선 마린보이 박태환이 금메달을, 피겨스케이팅에선 여제로 불리는 김연아가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기에 최근 치러진 하계올림픽과 동계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은 나란히 종합순위 세계 5위라는 엄청난 쾌거를 달성했다. 예전처럼 한 종목에 편중되지 않고 고르게 분포된 메달에서 알 수 있듯이, 10년전, 20년전에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한국스포츠의 성장과 발전을 대변하고 있다.

 

 


즉 7,80년대에나 먹힐 만한 헝그리정신이 없어도, 대한민국 스포츠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왜 일까. 스포츠는 더 이상 선수 개인의 노력과 피땀으로만 발전할 수 없는 환경에 놓였다. 현대스포츠는 선수의 재능과 노력뿐 아니라 과학적인 시스템이 접목된다. 배고픔과 투지가 전부가 아니라, 지피지기, 자신에 대한 그리고 상대팀과 선수에 대한 정보가 필수적이다.

 

2002년 히딩크감독이 한국 축구를 처음 평할 때, 기술은 나쁘지 않은 데 체력이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물론, 선수도 놀라고 국민들도 놀랐다. 그동안 한국축구는 체력과 투지는 좋은 데 기술이 부족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나를 몰랐고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정보가 부족했다. 그리고 히딩크감독은 한국선수들의 체력을 끌어 올리는 데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시스템을 도입했고, 한국선수들은 이탈리아나 스페인과 120분을 뛰어도 체력이 방전되지 않는 무서운 축구를 보여줘 4강에 오를 수 있다.

 

그럼에도 아직도 한국선수들에게 헝그리정신을 강요하는 사람은, 스포츠에 대해 영화 ‘넘버3’ 조폭두목 송강호만큼이나 무지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세계적인 수준에서 경쟁하려면 재능 있는 선수를 발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시스템이 필수로 갖춰져야 하고, 상대에 대한 정보를 얻고, 개인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해외전지훈련과 같은 경험과 실전감각을 쌓도록 기회를 주고 투자를 해야한다. 즉 스포츠에서 결과를 내려면, 헝그리정신이 아닌 자본이 필수불가결한 상황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25일 방송된 김승우의 토크쇼 ‘승승장구’에 국민요정으로 불리는 리듬체조 손연재선수가 출연했다. 손연재는 지난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리듬체조사상 처음으로 올림픽결선에 진출했고, 세계 5위라는 쾌거를 달성했다. 그리고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토로했다. 불과 1년전 만해도 세계랭킹 30위권 밖이었던 손연재에게, 세계 15위안에 들어야 주어지는 올림픽 티켓을 따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과제였고, 1년 만에 세계 5위라는 성과를 낸 것은 기적과도 같았다. 그만큼 손연재선수의 피땀이 스며든 결과였다.

 

손연재선수가 CF광고를 찍은 것도, 리듬체조의 메카 러시아 전지훈련 비용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한 달에 삼천만원이상이 드는 전지훈련비용을 자비로 감당해야 하는 손연재입장에서, CF광고는 한줄기 빛이었다. 그런 손연재에게 메달을 따고 난 뒤 CF광고를 찍어도 찍으라는 식으로 험한 악플을 달고 상처를 주는 네티즌이 많았다는 건 씁쓸하다. 투자없이 단지 헝그리정신으로 현실을 극복하고 결과부터 내놓으라는 악플러들과 무식한 넘버3 조폭이 뭐가 다른가.

 

 

 

왜 스포츠선수들에겐 유독 헝그리정신을 강요하고 메달콤플렉스에 빠져 결과를 평가하고 폄훼하려 드는가. 투자없는 결과를 바라는 것이야 말로, 얼마나 도둑놈같은 심보인가. 손연재는 이번 런던올림픽을 통해, 성적지상주의와 메달콤플렉스의 상징인 20세기 헝그리정신에 직격탄을 날림과 동시에, 21세기에 필요한 헝그리정신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리듬체조처럼 그동안 애정어린 관심이 배고픈 종목에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 배고프다는 사실을 무조건 수용하고 희생하며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선수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고 이용할 줄 아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자세를 겸비하는 것이다.

 

올림픽전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손연재는 CF를 찍을 자격이 있다. 국가대표 리듬체조선수이기 전에 대한민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손연재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런던올림픽을 치루는 과정에서, 그리고 결과에서 많은 국민들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리듬체조의 연기만큼이나 아름다운 행보를 보여주는 손연재에게 좀 더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