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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퀸 한지혜-김재원, 그들의 사랑에 최고 반전의 인물은?

바람을가르다 2012. 9. 24. 10:24

 

 

MBC 주말드라마 ‘메이퀸’은 통속극이다. 시청자에게 익숙하다. 그것은 곧 식상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메이퀸’은 매우 재밌다.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배우들의 열연도 돋보이지만, 내용의 짜임새가 완벽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장면에 군더더기가 없고, 주인공들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사건과 행동에는 반드시 개연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23일 방송된 ‘메이퀸’ 12회를 돌아보자. 강산(김재원)-천해주(한지혜)-박창희(재희)의 삼각관계, 엄밀히 따지면 장인화(손은서)까지 포함된 사각관계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해주를 가슴에 품고 있던 강산은, 해주와 창희가 결혼을 약속한 사이임을 알고 당황했다. 그리고 강산은 해주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하지만 강산의 사랑고백은 해주의 마음을 돌리기엔 너무 늦었다. 해주와 창희의 사랑은 이미 15년이란 단단한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산은 해주를 여전히 사랑하지만, 겉으로는 창희에게 해주를 행복하게 해주라며 쿨하게 포기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결국 해주와 창희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강산때문이 아니다. 바로 창희의 아버지 박기출(김규철) 때문이다.

 

박기출은 장도현(이덕화)이 성공하기 위해서 유진(천해주)의 아버지 윤학수(선우재덕)를 살해했던 사실을 목격하고도 모른 척 눈감았던 사람이다. 그래서 기출은 당시 학수의 아내 이금희(양미경)에게도, 학수의 동생 윤정우(이훈)에게도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그 뿐인가.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기출은 해주의 의붓아버지 천홍철(안내상)을 살해했다. 즉 해주와 해주의 가족에게 있어, 박기출은 절대 악이 될 수밖에 없다. 해주를 비롯한 주변인물들이 기출뿐 아니라, 도현의 악행을 아직 모르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메이퀸 12회 마지막에 창희가 처음으로 기출의 악행 일부를 알게 됐다. 15년 전에 해주를 죽이려 했던 사채업자를 심문하던 중, 사채업자로부터 해주를 납치한 이유엔 박기출의 지시가 있었음이 밝혀져, 창희를 패닉상태로 몰아갔다. ‘왜 아버지(박기출)는 해주를 위험에 빠뜨리려 했을까, 그것도 15년전에 어린 해주를?’ 창희의 머릿속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그 순간 강산이 나타나 창희에게 해주를 포기하라고 강하게 압박한다. 강산은 박기출이 해주의 머리채를 잡고 폭력을 행사하는 걸 가로막고 와서, 몹시 흥분한 상태였다. 창희는 해주를 향한 기출의 과거 악행에 충격에 빠졌고, 강산은 기출의 현재 악행에 분노하고 있었다. 메이퀸 12회 마지막 강산과 박창희의 교차는 굉장히 절묘한 타이밍이었고, 그것은 곧 해주의 남자가 박창희에서 강산으로 바뀔 것임을 의미하는 시작이었다.

 

 

 

박창희는 여전히 해주를 사랑하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다. 미련이 있더라도, 박기출이 천홍철을 살해한 사실까지 알게 된다면 더 이상 해주를 사랑할 자격조차 상실해버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버지의 원죄속에 자신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박기출에겐 ‘박기출=박창희’이다. 단순히 아들이 아니라, 기출에게 창희는 본인의 야망을 이뤄줄 아바타이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창희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박기출의 모든 악행의 시작은 창희로 귀결되고, 창희는 아버지뿐 아니라 본인을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당연히 해주를 떠날 수밖에.

 

시청자 또한 이러한 전개를 예상하고 있다. 그런데 ‘박기출-박창희-천해주’만큼이나 메이퀸 12회에서 시청자가 주목할 부분이 있다. 바로 천해주를 향한 강산의 마음이다. 강산이 해주를 사랑하는 건, 바로 해주에게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머니의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해주는 사랑을 고백하는 강산에게 말했다. “오빠(강산)처럼 부족한 게 없는 사람이 왜 나같은 여자를 좋아해?”라며 말이다. 그렇게 해주는 모르고 있었다.

 

 

 

강산에게 너무나 부족한 걸 해주가 가지고 있다는 걸. 강산이 한번도 느껴본 적 없는 모성애였다. 근데 재밌는 건, 알고 보면 박창희도 강산과 같은 포지션이란 사실이다. 창희 역시 해주에게 모성애를 느꼈다. 창희에게도 어머니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점은, 강산은 부모님의 얼굴도 기억이 안 나던 시절에 부모를 잃었고, 창희는 기출의 무능함에 집 나간 어머니를 어렴풋이 기억하는 정도랄까.

 

즉 어머니의 사랑이 부족했던 건 강산이나 박창희나 둘 다 마찬가지다. 단지 아버지가 있는 창희보다는, 강산이 좀 더 슬픈 가정환경에서 자랐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차이는 크게 다르지 않음을 의미한다. 강산-박창희 모두 어머니의 사랑, 그리고 해주의 사랑이 필요하다. 그런데 창희는 아버지 기출의 지독한 악행으로 해주를 잃을 상황에 놓였다. 창희는 억울하다. 그래서 강산보다 창희가 더 불행하게 느껴졌을 수 있다.

 

 

 

그러면 해주를 사랑하는 강산에게는 창희만큼의 장애물이 없을까. 강산이 창희가 아닌 창희아버지의 잘못으로, 그토록 원하던 해주를 가질 수 있다는 건, 너무 손쉬운 과정이다. 분명 강산은 메이퀸의 왕자 남자주인공이다. 그런 강산에게 햄릿의 고민없이 어부지리로 해주를 가질 수 있는가. 여기서 강산과 대척점에 있는 장도현(이덕화)이 수면위로 떠오르는 것이다. 강산에겐 복수의 대상 천지그룹 장도현회장. 그래서 천해주가 장도현의 친딸이 아닐까라는 반전과 의심이 가능한 것이다.

 

왜 일문(윤종화)의 어머니가 죽기 전에, 장도현과 이금희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극중에서 자주 거론될까. 왜 장도현은 천해주를 보고는, 고생했던 자신의 과거가 떠오른다면서, 느낌이 좋은 아이라고 말했을까. 메이퀸의 모든 원흉이 장도현의 욕심에서 시작됐음에도, 왜 해주를 괴롭히는 과정에선 장도현이 빠지고 박기출이 전담하게 됐을까. 의심을 하면 끝이 없다. 그리고 의심은 의심으로 끝날 때도 많다.

 

 

 

메이퀸은 통속극이다. 메이퀸은 복수가 아니라, 부모세대의 잘못과 갈등에 대해, 자녀세대의 용서와 화해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다. 부모의 잘못을 자식들에게 되물림해선 안 된다. 그래서 해주는 창희와 이별할 수 있지만 미워할 수 없고, 용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도현을 비롯한 부모세대도 해주에겐 마찬가지로 용서의 대상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해주는 어떨까. 해주는 누군가의 용서가 필요하지 않은 무결이고 순백의 여주인공이 될까.   

 

해주도 누군가의 용서가 필요한 여주인공은 아닐까. 누군가 아파할 해주를 용서해야 한다면, 그 주인공은 장도현에 대한 복수의 중심에 선 강산은 아닐까. 해주를 위해서 강산이 줄 수 있는 게 단지 사랑 뿐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메이퀸 12회를 보면서 더욱 강하게 남는 이유다. 물론 이것은 단지 예상일 뿐이고, 충분히 빗나갈 여지를 남긴다. 아무튼 12회까지 지켜본 ‘메이퀸’은 재미도 있지만, 개연성과 짜임새는 압권이다. 오랜만에 잘 만든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