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및 드라마

각시탈, '결혼식vs사랑고백' 최악의 커플은?

바람을가르다 2012. 9. 6. 09:33

 

 

 

 

 

 

마지막회를 앞둔 수목드라마 ‘각시탈’이 비극을 예고했다. 5일 방송된 각시탈 27회마지막 장면에서 양백(김명곤)선생의 주례로 신랑 이강토(주원)와 신부 오목단(진세연)의 결혼식이 진행됐고, 동진결사대의 아지트에서 시작될 찰나, 아지트의 위치를 미리 파악했던 기무라 슌지(박기웅)가 제국경찰 및 일본군을 대동하고 습격에 나섰기 때문이다.

 

분이(오목단)가 입은 순백의 드레스가, 누구의 피로 물들게 될 지 알 수 없으나, 분명해진 건 신랑신부는 물론이고 하객인 독립군들의 안위도 보장할 수 없는 핏빛 결혼식이 될 거란 사실이다. 슌지가 동진결사대의 병력을 이미 파악한 상태에서 승리를 자신하고 덮쳤기 때문에, 아무리 각시탈 이강토에 안섭(김지민)-진홍(정은별) 등 독립군 최정예멤버들이 버틴다고 해도, 동진(박성웅)의 아지트를 빠져 나가 극적으로 살아남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65분가량의 분량을 생각할 때, 결국 마지막회 초반에 이뤄질 결혼식에서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 극적으로 강토와 목단이 살아남는다 해도, 많은 독립군 희생자를 낳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주인공 강토-목단커플의 비극이 유력해진 건, 27회에서 조단장(손병호)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강토와 목단의 결혼식을 축하해줬고 두 사람이 너무 행복해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드라마의 패턴상, 마지막회에 나올 법한 이야기가 27회에 미리 나온 터라, 극적인 반전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해피엔딩을 기대했던 시청자들로선 27회가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때문에 강토의 프로포즈가 너무 이른 게 아닌가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제작진은 왜 그렇게 급하게 결혼식을 서둘렀을까. 선화(손여은)에게 도움을 받아 꽃반지를 완성한 강토가 목단에게 꽃반지를 끼워주고 청혼을 한 뒤, 달콤한 키스로 마무리한 것까진 깔끔했다. 문제는 무장봉기라는 거사를 앞두고, 굳이 결혼식을 강행해야 했는가에 있다. 강토가 결혼식을 원했다면, 목단이 잠시만 결혼식을 뒤로 미루자고 타일렀다면 어땠을까. 목단의 아버지 담사리(전노민)가 죽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말이다.

 

 

 

바로 이런 점이 강토-목단의 결혼식 강행이 다소 억지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다. 아무리 피로 물들게 될 슬픈 결혼식이 드라마틱하고 감동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해도, 과정에서 설득력을 잃으면 시청자가 스토리에 몰입하며 느껴야 할 감정에도 기복이 생길 수밖에 없다. 주인공의 비극, 새드엔딩을 위한 설정에, 굳이 결혼식을 대입할 필요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더욱 아쉽다. 거창한 예식이 아닌, 강토와 목단의 진한(?) 하룻밤정도로도 충분했다. 결혼식을 깽판 놓을 슌지도, 더 이상은 용서가 안 되는 최고의 밉상에 요상스럽고 찌질한 서브 남자주인공으로 기억될 판이다.

 

결혼식을 급하게 강행한 강토-목단만 타이밍이 나빴던 게 아니다. 우에노리에 채홍주(한채아)를 향한 호위무사 가츠야마준(안형준)도 본인 캐릭터를 스스로 죽인 최악이었다. 홍주가 우에노 회장에게 죽임을 당할까봐, 잠도 못자고 그녀의 곁을 지키던 가츠야마는 퀭한 눈으로 홍주에게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털어놨다. 차라리 도망을 치자면서. 이에 홍주는 권력을 가진 남자가 좋다며, 옆구리에 검 하나 달랑 찬 가츠야마와는 절대 행복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과정에서 가츠야마가 참 말 많은 남자란 걸 알게 됐다. 그동안 침묵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동안 홍주의 질문과 명령에 짧은 대답만 내놓으며 나름 호위무사의 포스를 이어가던 그가, 마지막회를 코앞에 두고 할 말 못할 말다하고 나니, 캐릭터가 깃털마냥 가볍게 보였다. 뿐만 아니라, 감정표현이 너무 직설적이고 적극적인데, 안형준의 연기는 무미건조해 안타까울 지경.

 

‘모래시계’에서 고현정을 지키던 이정재의 포스가 재차 오버랩된 순간이었다. 어차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면, 속내를 모두 털어놓는 말이 아니라 극적인 순간에 목숨 건 행동으로 보여주길 기대했건만, 그는 호위무사에서 수다맨으로 전락했다. 결국 호위무사 가츠야마의 사랑고백편을 채홍주가 단칼에 베어버림으로써 끝이 났지만, 굳이 없어도 될 장면이었고 호위무사의 사랑고백도 최악에 가까웠다.

 

 

 

드라마 각시탈이 새드엔딩에 가까워진 현재, 해피엔딩을 기대했던 시청자들로선 27회가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욱 실망스러운 건, 마지막회로 넘어가는 과정이었다. 모든 상황이 급조된 듯 급하게 이뤄지다 보니, 과정의 설득력도 떨어질 뿐 아니라, 캐릭터들의 매력도 동반 추락하는 악수가 되고 말았다. 결혼식과 사랑고백이 애절함이 아닌, 결말로 가는 과정에 옥에 티로 작용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하고 시청자에게 감동과 여운을 주기 위해서 필요한 건, 피로 물들 결혼식이나 드레스도, 숨겨왔던 수줍은 사랑고백도 아니다. 결말이 새드엔딩이든, 해피엔딩이든, 시청자를 설득하고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캐릭터들의 언행이고 이를 토대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과정이다. 어쩌면 마지막회보다 더 세심하고 설득력있게 그려져야 했던 각시탈 27회가, 마지막회의 감동과 여운에 집착한 나머지, 제작진이 너무 급조된 상황을 만든 건 아닌지 아쉬운 대목이다. 이러한 우려를 씻어내는 쇠퉁소처럼 통쾌하고 인상깊은 마지막회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