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여자친구는구미호, 이승기안에 송승헌?
30일 종영한 <내여자친구는구미호>는, 역대 구미호들의 한을 풀어주듯 예상대로 해피엔딩이었다. 주인공들에겐 폭탄이 있었지만 아무도 죽지 않았다. 구미호(신민아)를 살리려 자신의 목숨을 파리처럼 생각했던 차대웅(이승기)도 살았고, 대웅을 살리고 죽음을 맞이 했던 미호도 정신 나간 하늘덕분에 완벽하게 부활했다. 미호에게 대신 죽어줄 수도 없다며 조연의 아픔을 토로했던 개선생 동주(노민우)도, 마지막엔 하얀 이가 보이도록 활짝 웃었다.
그들의 행복을 지켜준 건, '여친구'의 히든카드 삼신할머니(김지영). 반인반요 동주가 저지른 100일 동안 구미호 인간만들기 프로젝트는, 50일만에 일어난 차대웅의 반란으로 미궁속에 빠졌었다. 도무지 해피엔딩의 길이 보이지 않았던 것. 그러나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로 볼 수 있는 삼신할머니의 강림. 구미호의 목숨정도는 일식을 핑계로 살려 낼 수 있는 신의 등장. 물론 인간 대웅과 요물 구미호가 펼친, 목숨보다 강한 '사랑'에 감탄한다는 전제가 깔렸지만 말이다.
여친구 16회 초반부터 삼신할머니의 등장과 동시에 퍼진 해피엔딩의 기운 덕분에, '미호-대웅'의 폭풍눈물 감동이 반으로 줄은 맛은 없지 않았다. 미호커플이 나누었던 안타깝고 아름다운 눈물 연속에도 불구하고, 삼신할머니란 든든한 존재감이 시청자로선 오히려 감정몰입에 훼방꾼이 되었기 때문이다. '쟤들 불쌍해서 어떡해?'가 아니라, '지금은 마음껏 울어도 돼, 어차피는 미호는 무사할테니. 니들 행복할거야. 삼신할머니가 있으니까!'라는 심정으로 지켜봐야 했다는 게 옥에 티랄까.
내여자친구는구미호, 이승기안에 송승헌있다?
그러나 삼신할머니의 재림를 알지 못하는 극중 미호와 대웅은 원없이 울었다. 미호를 위해 목숨을 내놓고 구슬을 원샷한 대웅을 몰래 지켜봤던 미호도 울었고, 출연자대기실에서 사랑하는 미호를 위해 죽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되뇌였던 대웅이 울었다. 그렇게 눈물속으로 고고는 시작됐다. 그리고 체육관 키스신에서 눈물의 절정을 보여 준 '이승기-신민아'커플.
다만 눈물신이 쉴새없이 반복되다보니, 의외의 모습들도 눈에 띤다. 특히 차대웅을 열연한 이승기를 보면, 각종 눈물 퍼레이드속 한 켠에 조인성이 보였다. <발리에서 생긴 일>에 조인성의 눈물연기를 이승기도 재현했던 것이다.
미호가 죽기 전날. 창고방에서 미호가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베프 닭아줌마에게 전화했을 때, 오늘은 안 된다고 하자 실망하는 미호. 이를 지켜보는 대웅은 안타까움을 주체하지 못한다. 그리고 대웅은 떨리는 목소리로 억지로 눈물을 참으며,
"음으으으..... 그럼 우리 뭐할까?"
순간 하지원과 마지막 통화를 하던 조인성의 떨리는 목소리가 오버랩된다. 이승기의 입으로 주먹만 물었다면 조인성표 눈물연기로의 귀환이었지만, 이승기는 본인의 칼라를 지키고 이승기표 눈물연기는, 아무리 눈물을 참기 힘들어도 주먹을 절대 입에 물지 않는다를 완성했다.
하지만 제작진은 더 큰 반전(?)을 준비했다. 바로 <가을동화> 송승헌이에요!
체육관에서 대웅과 눈물의 키스를 하고, 한 여름밤의 꿈처럼 사라진 미호. 대웅은 미호가 사라지자, 이건 꿈이 아니라며 좌절하고는, 이내 실신하듯 애처롭게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미호를 찾아 헤매던 대웅은 달려오는 트럭에 부딪히는 사고를 당한다. 이건 누가 뭐라고 해도 가을동화 준서 송승헌이다.
가을동화의 마지막은 쇼팽의 '이별의곡'에 맞춰 준서 송승헌이 은서 송혜교를 업고 가다, 팔을 길게 늘어뜨린 은서를 하늘나라로 먼저 보냈었다. 그리고 다음날 준서는 달려오는 트럭을 피하지 않았다. 대웅도 마찬가지였다. 미호가 떠나자, 트럭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한술 더 떠, 트럭을 향해 돌진할 듯한 강한 눈빛을 쏴 댔다. 마치 트럭을 내몸같이 모든 걸 맡겼으나, 대웅의 가슴속엔 미호의 여우구슬이 있었다. 대웅도 이제 맘대로 죽지 못하는 운명에 놓인 것이다. 그리고 이를 미호가 지켜봤는지 하늘에선 여우비가 내렸다.
결국 이승기는 조인성은 피해갔지만, 홍자매에 의해 송승헌은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여친구안에 가을동화. 바로 이승기안에 '송승헌있다'를 찍고 만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송승헌의 준서는 죽었고, 이승기의 대웅은 살았다. 또한 송혜교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바람과 함께 사라졌던 신민아는 일식과 함께 돌아왔다.
비록 <제빵왕김탁구>에 고전했지만 <내여자친구는구미호>는 '이승기-신민아'커플 덕에 나름 선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정지훈-이나영'의 <도망자>에 맞서게 될, '고현정-권상우'주연의 <대물>에게 완벽한 토스를 해주고 떠났다는 것도 유종의 미로 부족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