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호여우누이뎐 8회, 제작진의 착각?
27일 방송된 <구미호여우누이뎐> 8회의 엔딩은, 전날 방송됐던 7회와 같은 장면에서 끝이 났다. 박수무당 만신(천호진)의 동굴에서, 연이(김유정)를 죽이고 간을 빼내, 자신의 딸 초옥(서신애)을 살리려는 윤두수(장현성)의 모습. 결과론적으로 보면, 극의 전개 자체가 도돌이표를 찍은 셈이다. 시청자로선 김이 빠지는 셈이다.
도대체 70분 동안 <구미호여우누이뎐> 8회가 보여준 것은 무엇인가? 표면적으론 연이가 도망치고 윤두수가 뒤를 쫓는 한편의 추노(=추연)였다. 여기에 구미호 구산댁(한은정)의 연이를 찾는 울부짖음. "연아... 연아...." 산중을 헤매며 연아를 부르는 반복과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 그리고 제대로 산통을 깰 수 있었던, 조현감(윤희석)의 의미없는 헛다리짚기.
그렇다면 <구미호여우누이뎐> 8회는, 그동안 보여줬던 극의 포스를 반토막 낸 실패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찬찬히 되짚어 보면, 8회는 앞으로 극이 진행해 나갈, 중요한 소스를 여러 군데 흘려 놓는 치밀함이 묻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구미호여우누이뎐 8회, 제작진의 착각?
바로 연이의 죽음이 불러 올 파장이다. 가장 중요한 윤두수와 구산댁의 갈등. 8회에서 구산댁은 윤두수가 연이를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오히려 그가 연이를 친딸처럼 아낀다고 생각한다. 연이가 죽고나면, 구산댁의 복수대상은 윤두수가 아닌 다른 이들에게서 시작될 것이고, 결국 진범이 윤두수라는 사실에 도달하는 순간까지가 하나의 시청포인트다.
이후 느끼게 될 구산댁의 참을 수 없는 배신감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장면이 8회에 이뤄졌다. 산중에서 만난 윤두수와 구산댁. 구산댁이 예전에 살던 집으로 윤두수를 인도했다. 만약 윤두수의 손으로 직접 연이를 죽이지 않는다해도, 구산댁으로선 윤두수가 연이를 죽였다고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일종의 복선. 특히 구산댁을 그린 연이의 그림이 이를 방증한다.
만신의 정체에 대해서도 일정부분 드러난 게 8회다. 천우(서준영)를 만난 만신은, 그에게 기생 매향의 아들이구나라며, 아는 척을 한다. 만신은 '매향-천우'와 관계가 깊은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매향의 죽음에도 연관된 인물. 동시에 윤두수 혹은 윤두수 일가의 사람에 의해, 매향의 죽음이 이뤄졌고, 이것 때문에 만신이 윤두수에게 일종의 업보를 안기지 않았을까. 만신이 요물이 아닌, 원한을 품은 인간이란 사실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또한 정규도령(이민호)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나타났다는 사실을, 연이가 알게 됐다는 점도 이후 전개에 의미를 부여한다. 연이가 죽어 한을 품고, 만약 초옥의 몸에 빙의가 된다고 가정할 때, 어떤 식으로 돌변할 지 모르는 연이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은 구산댁보다 정규도령에 가깝다. 아직 연이는 어머니가 구미호란 사실을 모른다. 또한 연이뿐 아니라 초옥에게도 동경의 대상인 정규도령은, 연이와 초옥의 감정이 일치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이렇듯 향후 스토리전개를 매끄럽게 하기 위한, 무게감있는 복선들이 깔린 게 8회다. 그러나 8회는 시청자에게 강한 인상보단 지루함을 안겨 주었다. 이유는 진행의 정체다. 확실한 하나면 됐다. 마지막장면에서 연이가 노래를 부르며 끝낼 것이 아니라, 죽는 상황으로 극적 마무리가 됐다면, 쫓고 쫓기는 무한 반복도 잊혀질 수 있었다.
제작진의 착각은 '연이가 과연 죽었을까?'란 떡밥으로 시청자가 일주일을 기다려주길 바랬겠지만, 이미 닳아 없어질 정도의 식상한 떡밥을 재차 주물럭거릴 시청자는 드물다. 9회에 연이가 죽는다면, 차라리 8회의 마지막에 확실히 칼을 뽑았어야 했다. 연이의 죽음이 불러올 '후폭풍'을 예상하고 기대케하는 것이, 오히려 시청자를 사로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엔딩부에 윤두수가 낭떠러지로 추락사할 뻔한 연이를 구해, 만신의 동굴로 손잡고 가는 모습도 극 흐름을 역행하는 코미디에 가까웠다. 연이는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윤두수를 피해 도망쳤던 철부지 아이다. 그동안 도망쳤던 것은 무엇인가.
어린 아이가 남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순순히 내놓겠다는 것도 우습지만, 해치지 않을거라며 연이의 손목을 낚은 윤두수의 반복된 거짓말. 윤두수란 캐릭터의 매력을 반감시킨다. 차라리 연이가 낭떠러지로 떨어져 의식을 잃고 간신히 목숨줄만 연명한 상태에서, 윤두수가 연이를 업고 만신의 동굴에 다시 내려놓았다면 오히려 설득력이 있지 않았을까.
8회는 큰 그림에서 보면 나쁘다고 볼 수 없지만, 부분적으로 시청자를 읽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있다. 전개가 늘어지더라도, 강력한 한방이 있었다면 용서가 된다. 그 한방을 제작진이 지나치게 아꼈다는 게, 명품드라마에 8회가 스크래치를 낼 꼴이 돼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