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모는 사랑하면 안 되나, ‘천만번사랑해’
시청률 40%를 기록하며 주말 안방을 책임졌던 <솔약국집 아들들>이 종영된 이후, 바통을 이어받은 <수상한 삼형제>와 주말 저녁 치열한 선두경쟁을 벌이는 드라마 <천만번 사랑해>.
<천만번사랑해>는 불법 대리모, 불법 장기매매 등의 소재를 안방에 고스란히 가져와 초반부터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더군다나 막장의 기본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는 불륜, 출생의 비밀 등을 재현하며 막장드라마라는 오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시청률 20%고지를 넘어서며 본 궤도에 올라 선 드라마는, 반짝 폭등이 아닌 꾸준한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고은님(이수경)과 백강호(정겨운)의 러브라인 본격적으로 가동되며, 앞으로의 전망을 더욱 밝게 한다.
<천만번사랑해>의 인기비결은 무엇인가?
막장드라마가 갖춘 최고의 장점은 바로 뚜렷한 캐릭터이다. 캔디렐라, 테리우스, 뺑덕어멈 등,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의 개성이 뚜렷해, 막장이 가진 복잡한 인물간의 거미줄같은 구조속에서도 시청자의 몰입에 전혀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기에 뻔한 에피소드지만, 먹기 좋게 쪼개는 짜임새가 돋보여 시청자로선 소화에 부담이 없다.
특히나 막장드라마가 범하기 쉬운 억지스런 에피소드의 설정이 덜하다는 점이 <천만번사랑해>의 장점이다. 종종 캐릭터가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오버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경우 드라마는 뜬금없는 이야기를 쏟게 된다.
그러나 <천만번사랑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철저하게 주인공 고은님과 백강호를 중심으로, 갈등의 끝에 만나게 결과물(백세훈(류진)과 고은님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유빈이라는 사실)을 크게 터트리기 위해 등장인물간에 연결고리를 짜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등장인물간에 엮이고 엮인 설정은 억지스러울 지 모르나, 사족이 될 만한 인물이 없다는 점이다.
드라마를 이루는 에피소드는 어디서 본 듯한 구닥다리에 불과하고, 모든 인물간에 설정은 친구고 이웃이고, 친척인 한마디로 한통속인 억지가 있다. 그러나 이 점이 드라마의 짜임새를 높이고 시청에 도움을 준다. 인물간의 억지설정은 <천만번사랑해>만 범하는 오류가 아니기 때문에 용서가 되며, 에피소드가 평범하다는 것이 오히려 막장의 느낌을 죽이는 효과를 부르기 때문에 눈살이 찌푸려지지 않는다.
대리모는 사랑하면 안 되나?
드라마가 서서히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시청자의 관심은 대리모 고은님(이수경)과 백마탄 왕자 백강호(정겨운)의 사랑에 집중된다.
고은님은 사랑없는 인공수정으로 낳은 아기를 잊지 못한다. 여기에 백강호라는 멋진 남자가 사랑을 고백하며 다가오지만, 그를 사랑하면서도 받아드리지 못한다. 자신이 대리모였기 때문에 평생 혼자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조선시대 사고방식을 가진 여자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렇다쳐도 현실적인 감각에선 그녀의 선택을 쉽게 납득할 수 없다.
고은님은 분명 영리목적으로 난자를 매매한 케이스에 해당하며, 현행법상 법을 어긴 범법자이다. 그러나 간이식 수술을 받아야하는 아버지를 위해 효녀 심청을 자처한 대리모라고 할 수 있다. 불가피한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시청자로선 그녀를 응원하게 된다. 백마탄 왕자의 백마위에 올라타도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시청자의 바램대로 백강호와 이뤄지게 되있다.
고은님은 착한 심성을 가진 효녀에 이쁘고 영민한데다, 밝고 긍정적인 캔디렐라라고 할 수 있다. 너무나 완벽한데 대리모라는 과거가 있다. 백강호 역시 밝고 유쾌하며 잘 생긴데다, 따뜻한 배려가 묻어나는 남자로 이보다 좋을 수 없다. 물론 재벌 2세라는 플러스 알파까지 갖췄으나, 본처의 자식이 아닌 불륜으로 인해 낳은 서자로 출생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완벽한 두남녀에게 흠집을 내놓았다. 단순한 극적 장치를 넘어 시청자의 이해와 배려를 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리모와 재벌 2세라는 결코 현실에선 만나기도, 이루어지기도 힘든 설정을 품에 안고 달리는 드라마가 <천만번사랑해>이다. 천만번 사랑해가 아닌, '천만분의 일'의 사랑을 하고 있다. 그만큼 현실감은 떨어지나 극의 재미를 높이는 드라마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드라마가 아닌 현실이라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단순히 대리모의 경력을 가진 여자와 평범한 남자로 범위를 옮긴다면 천만이 아닌 만분의 일로 줄어들고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으로 바뀐다.
당연히 사랑이 먼저라고 말하는 사람이 대다수라고 생각한다. 사랑에는 나이도 국경도 없는데, 대리모라는 흠은 사랑으로 덮어질 수 있는 문제이다. 진정한 사랑이 담보된다면 말이다. 그러나 막상 본인 혹은 본인의 가족이 연관된다면 쉽게 받아들 수만은 없는 문제가 된다. 아무리 생계를 위한 수단이었으며, 불가피한 선택이 뒤따랐다해도 성을 매개로 생명을 사고 판 과거를 이해하기엔 불편함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반에 이뤄진 막장논란에서 벗어나 <천만번사랑해>가 시청자의 환심을 살 수 있었던 것은 불륜이나 폭력과 같은 시청자의 피부에 와닿기 쉬운 문제로 불편함을 주기 보단, 대리모와 재벌 2세라는 판타지가 부여됐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대리모는 불륜보다 현실과의 괴리감이 크다는 것이 드라마자체로 수용하기에 탈이 적다는 점이다. 물론 류진과 이시영의 불륜은 옥에 티로 비춰지지만 말이다.
<밥줘>, <천사의 유혹>, <아내가 돌아왔다> 등 여전히 막장드라마의 홍수속에 있지만, 막장드라마도 어떤 식으로 다루느냐에 따라 호평과 악평이 갈리게끔 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