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연예

이유리 이경규 대상, 비주류의 이유있는 반란?

바람을가르다 2014. 12. 31. 13:12

 

 

 

 

30일 열린 2014 MBC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왔다 장보리’의 국민악녀 연민정 이유리가 대상을 수상했다. MBC는 방송연예대상에 이어 연기대상에도 실시간 시청자투표를 도입해, 대상의 주인공을 100% 시청자에게 일임했다. 이유리가 절반이 넘는 압도적인 표차로 후보에 오른 송윤아와 오연서를 제치고 대상의 영예를 누렸다.

 

유재석에 이은 이유리. 연말시상식에서 MBC가 시청자투표라는 파격적인 선택을 했지만, 결과는 다수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또한 이유리는 지상파 방송3사 PD 160여명이 뽑은 PD상도 수상했다. 즉 이유리는 일선의 PD도, 안방 시청자도 한 목소리로 2014 MBC드라마 최고의 캐릭터, 연기자로 인정한 것이다. 덕분에 반론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다. 잦은 논란에 노출됐던 MBC연기대상이 올해만큼은 만장일치에 가까운 대상을 배출한 셈이다.

 

같은 날 2014 SBS 방송연예대상 시상식이 열렸다. 다수의 시청자가 가장 주목했던 건 국민MC 유재석의 트리플크라운 여부였다. 이미 KBS연예대상-MBC연예대상을 수상했고, SBS에서도 런닝맨으로 꾸준히 활약했던 터라, 방송3사 대상을 모조리 휩쓰는 유재석의 3관왕을 많은 이들이 예상하고 기대했다. 그러나 SBS는 유재석이 아닌 이경규를 택하면서 유재석의 트리플크라운은 아쉽게도 무산됐다.

 

 

 

 

왜 SBS연예대상은 유재석이 아닌 이경규를 선택했을까. 올해 SBS예능은 시청률과 화제성에서 KBS와 MBC에 밀렸다. KBS는 해피선데이 ‘슈퍼맨이 돌아왔다’-‘1박2일’에 이은 ‘개그콘서트’의 마무리로 일요일 저녁을 평정했다. MBC는 여전히 간판역할을 하는 ‘무한도전’과 일밤 ‘진짜사나이’ 여군특집이 상당한 이슈를 몰고 왔다. 반면 2014 SBS예능을 떠올리면 ‘이거다!’라고 꼽을 게 없다. 상대적으로 파괴력이 약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꾸준했지만 아쉬움도 남긴 ‘정글의법칙’ 김병만, ‘스타킹’ 강호동, ‘런닝맨’ 유재석, ‘힐링캠프’ 이경규가 대상후보로 선정됐다. 누가 대상을 받아도 이상할 게 없는 후보들. 그리고 SBS연예대상은 지상파 중 유일하게 남은, 톱스타 섭외가 잘 되는 1인 토크쇼 ‘힐링캠프’의 이경규를 택했다. 이경규가 ‘스타주니어쇼 붕어빵’까지 진행한다는 게 플러스된 측면도 있었다.

 

유재석의 트리플크라운이 깨진 건 본인과 팬들에겐 아쉽겠지만, 연말에 한 사람의 독식이 보기 좋은 모양새라 할 수도 없었다. 특히 올해는 위기론이 등장할 정도로 유재석의 활약이 명성에 비해 미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연예대상 세 개중에 두 개씩이나 받아 충분히 기대이상의 성과를 얻어냈다. 또 애초 트리플크라운을 따지는 게 남을 배려하는 MC 유재석의 캐릭터와 어울리지도 않았다. 그래서 김병만의 성과를 무시할 수 없음에도, 후보중 유일하게 SBS에서 대상이 없던 이경규를 선택한 건 최선은 아니어도 차선은 된 셈이다.

 

 

 

 

 

이유리-이경규, 왜 비주류가 인정받는가

 

예년에 비해 올해 연말시상식은 비교적 예측이 쉬운 편에 속한다. KBS연기대상은 ‘정도전’과 ‘가족끼리 왜 이래’의 유동근, SBS연기대상은 ‘별에서 온 그대’ 전지현-김수현의 공동대상이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오늘 방송에서의 결과도 크게 다를 것 같진 않다. 그만큼 연기대상의 기준인 연기력과 캐릭터는 기본이고, 시청률까지 받쳐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케이스임에도 이유리는 조금 다르다. ‘왔다 장보리’는 올해 MBC드라마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유리의 연기력 또한 매우 뛰어났다. 다만 이유리가 연기한 연민정은 주인공이 아닌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녀였다. 그럼에도 대상을 수상한 것이다. 상당히 특이한 케이스다. 권선징악을 모토로 한 드라마에서, 모든 위기를 극복한 주인공이 아닌 악녀가 실질적인 주인공 대접을 받았으니 말이다.

 

물론 ‘선덕여왕’의 미실 고현정이 악녀임에도 불구하고 대상을 받은 사례가 있다. 그러나 당시 고현정이란 배우의 인지도, 웰메이드 드라마라는 찬사속에 위치한 독특하고도 매력있는, 무게감있는 캐릭터라는 점 등이 플러스 알파로 작용했다. 반면 ‘왔다 장보리’는 높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막장드라마라는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캐릭터 자체도 막장에서 아주 흔한, 밑바닥 악녀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다고 이유리가 고현정만큼의 인지도, 파괴력을 안고 시작했는가. 그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미실이, 고현정이 주류라면 연민정, 이유리는 비주류다. 악녀의 품격이란 게 미실에게 있다면, 연민정에게서 품격을 따지기엔 막장드라마가 주는 가벼움이 눈과 귀를 막는다. 그럼에도 연민정은, 이유리는 극복했다. 이유리의 연기가 시청자를 설득했다. 드라마가 막장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유리가 유명한가 안 유명한가가 기준이 아니라. 주어진 캐릭터, 연기에 배우가 얼마나 혼신을 다하는가에 시청자가 주목하고 응원하기 시작했다.

 

SBS연예대상 이경규도 비주류에 속한다. 이유리만큼 덜 유명한 건 아니다. 그러나 톱MC중에서 덜 인기가 있는 건 사실이다. 바로 그의 진행스타일이 호감보단 비호감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경규는 녹화가 길어지는 걸 참지 못한다. 그래서 성질을 곧 잘 부린다. 박명수가 재미를 위해 호통개그를 한다면, 이경규는 재미의 유무보단 가식없이 호통과 버럭을 작렬한다.

 

많은 이들이 좋은 MC의 표본으로 배려의 아이콘 유재석을 꼽는다. 카리스마의 아이콘 강호동이나 애드립의 황제 신동엽도 스타일은 달라도 유재석처럼 배려를 기본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경규는 다르다. 그는 배려가 아니라 막말로 성질대로 한다. 그만큼 솔직하다. 자신의 색깔을 고집한다. 그래서 그의 진행스타일에 호불호가 갈리지만 MC가 모두 유재석스타일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주류와 대척점에서 있는 이경규가 오히려 희소성있는 MC가 된다.

 

 

 

 

‘힐링캠프’와 같은 토크쇼에서 이경규가 빛을 발하는 것도 연장선에 있다. 이경규이기 때문에 시청자가 궁금한 질문을, 때로는 쓴소리를 여과없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서태지를 불러놓고 배려만 하느라 리드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 ‘해피투게더’ 유재석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즉 유재석만큼이나 방송계에서 필요한 MC가 바로 이경규나 김구라같은 쓴소리의 비주류 MC들이다.

 

비주류로 분류되는 이유리와 이경규가 연말시상식에서 대상을 거머쥐었다. 상당히 유의미한 결과다. 캐릭터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고, 시청자가 보는 관점이 넓고 다양해졌다는 방증이다. 어떤 부분을 주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준다. 덕분에 상대적으로 강자이기보단 약자, 비주류였던 그들의 반란이 내심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