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나의거리 이희준 김옥빈처럼 드라마도 썸을 탄다?
드라마에는 드라마같은 드라마가 있고 드라마같지 않은 드라마가 있다. 전자의 대표적인 예로 신데렐라스토리를 꼽을 수 있다. 대개 대기업 본부장으로 등장하는 재벌2세 남자주인공과 사고뭉치 가족을 떠안은 가난한 여자주인공의 사랑이야기. 현실에선 절대 이뤄질 것 같지 않은 커플. 그런데 드라마에선 너무 흔하게 쓰이는 설정. 그래서 드라마같은 드라마가 된다. 멋만 잔뜩 부린 비현실적인 에피소드가 쏟아져도 ‘드라마니까.’로 용서되는 드라마.
그럼 드라마같지 않은 드라마는 무엇인가. 현실감이 느껴지는 드라마다. 다큐멘터리 느낌은 없다. 분명 드라마다. 그런데 등장인물들을 쫓아가다 보면 사람냄새가 난다. 왕자도 없고 신데렐라도 없다. 한순간 삐끗하면 벼랑끝으로 내몰릴 원한, 피의 복수같은 스케일 큰 사건을 다루지도 않는다. ‘죽느냐 사느냐’보단 ‘짜장이냐 짬뽕이냐’가 어울리는 드라마로, 주로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거나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캐릭터, 에피소드로 채워진다. 그래서 드라마같지 않은 드라마는 내(혹은 내 주변) 얘기인 듯, 내 얘기 아닌, 내 얘기 같은 드라마라 할 수 있다.
이희준-김옥빈 주연의 JTBC 월화드라마 ‘유나의 거리’는 오랜만에 안방에서 만난 드라마같지 않은 드라마다. 주인공 김창만(이희준)은 본부장도 아니고 재벌 2세도 아니다. 요즘 돈만 있으면 누구나 가는 그 흔한 대학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정직하고 성실한 남자다. 공무원시험을 준비중이나 당장은 먹고 사는 문제도 급해, 월 200만원에 집주인이자 전직 조폭 한만복(이문식)이 운영하는 변두리 콜라텍 지배인이 된다.
여주인공 강유나(김옥빈)도 신데렐라가 아니다. 물론 가난한 여주인공은 맞다. 하지만 그녀가 부양해야할 사고뭉치 가족이 없다. 오히려 소매치기가 직업인 유나 본인에게 문제가 많다. 유나는 전설의 소매치기 딸로 재주가 남다르다. 현재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아 나름의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지갑사냥에 나선다. 하지만 소매치기로 살 수 없다. 그렇게 살면 안 된다. 죽은 아버지의 유언도 그랬다. 그래서 그녀앞에 운명처럼 돈많은 왕자가 아닌 정직한 남자 김창만이 나타났는지도.
드라마에 왕자도 없고 신데렐라도 없다. 그냥 같은 집에 월세 살며 썸타게 된 갑남을녀가 있을 뿐이다. 남녀주인공이 평범한 듯 보여도, 왕자와 신데렐라처럼 익숙하고 정형화된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에 주변인물과의 시너지효과는 오히려 크게 나타난다. 에피소드 또한 신데렐라스토리같은 패턴을 벗어나 진부함과는 거리가 멀다. 즉 남녀주인공의 사랑 혹은 복수가 아닌, 직업, 성별, 나이, 성격까지 천차만별인 이웃들이 얽히고설키며 희로애락을 공유하는 드라마 ‘유나의거리’에선, 김창만과 강유나가 그 어떤 주인공캐릭터보다 효과적이고 매력적이다.
주인공의 목숨을 위협하는 절대 악역도 없고, 그 흔한 출생의 비밀도 없다. 자극적인 맛을 내는 인공조미료같은 설정들이 없다보니 ‘유나의거리’는 보는 이에 따라 심심할 수 있다. 막장드라마에 길들여진 시청자라면 더욱. 그러나 조미료가 적게 들어갈수록 드라마는 담백한, 색다른 재미를 줄 수 있음을 ‘유나의거리’는 보여준다. 멋부리지 않아서 좋다. 스토리가 탄탄해서 좋고 캐릭터가 개성만점이라 좋다. 이희준의 사람냄새나는 연기가 좋다. 김옥빈의 재발견이 좋다. 작가 김운경의 전작 ‘서울의달’, ‘파랑새는있다’ 등을 재밌게 본 시청자라면 더욱 놓칠 수 없는, ‘유나의거리’는 요즘 드라마같지 않은 명품드라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