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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벨기에, 승리의 조건은 이임생과 손흥민?

바람을가르다 2014. 6. 26. 08:34

 

 

 

2014 브라질월드컵 F조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이란이 에딘 제코를 앞세운 보스니아에게 1:3으로 완패했다. 이로써 현재까지 아시아국가의 성적표는 이란 1무 2패, 일본 1무 2패, 호주 3패로 16강 진출은 커녕, 각조 꼴지라는 불명예로 이번 대회를 마감중이다. 한마디로 아시아의 몰락, 월드컵에 명함을 내밀기엔 민망한 수준이다. 때문에 벨기에와의 경기를 앞둔 대한민국 홍명보호에 아시아의 시선이 쏠린다. 과연 한국이 벨기에를 이겨서 브라질월드컵 아시아팀으론 유일하게 1승을 신고하며 자존심을 지킬 수 있을까. 아니면 벨기에에 패해 월드컵에서 아시아는 무쓸모, 조꼴지란 방점을 찍게 될까.

 

일단 분위기만 놓고 보면, 아시아의 자존심보단 월드컵의 수치 아시아 4총사에 무게가 기운다. 지난 알제리전에서 2:4의 완패를 당했던 게 너무나 뼈아프기 때문이다. 한국에겐 단순한 1패가 아니었다. 특히 전반전은 대한민국 월드컵 역사상 최악의 경기력으로 꼽힌다. 1994년 미국월드컵 독일과의 조별예선에서도 상대에게 전반전에만 3골을 내줬지만, 그 때보다도 경기력면에서 형편없었던 게 알제리전이다. 수비는 실수연발, 공격은 슈팅 제로. 답없는 경기. 더군다나 미국월드컵 당시 독일은 디펜딩챔피언이었고 한국은 월드컵 첫승이 숙원일정도로, 경험과 실력, 모든 면에서 축구강국들과의 격차가 확연했다.

 

그러나 한일월드컵을 기점으로 한국축구는 눈부시게 성장했다. 개최국 프리미엄이 어느 정도 작용했지만 한국은 명실상부 월드컵 4강국이다. 2006 독일월드컵에선 1승1무1패 승점 4점으로 아깝게 조별예선을 통과하지 못했으나, 2010 남아공월드컵에선 1승1무1패로 원정 첫 16강이란 역사를 새로 썼다. 또 2012 런던올림픽에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더 이상 한국을 축구변방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때문에 전세계의 많은 축구전문가들과 도박사들은 H조에서 러시아와 한국이 16강 진출을 다툴 것이라 봤고 알제리는 한 수 아래로 평가했던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1승 제물로 여겼던 알제리와의 경기결과가 2:4 참패로 나타났다. 결과보다 경기력은 더 실망스러웠다. 알제리전은 월드컵 경험이 앞선 우리가 자신감을 가지고 경기를 풀어야 했다. 초반부터 강하게 몰아붙여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어야 했는데 조심스럽다 못해 소심했고, 반대로 알제리는 거침이 없었다. 경기력이전에 심리싸움에서 말렸다. 도대체 무엇때문에?

 

튀니지와의 평가전 0:1, 가나와의 평가전 0:4의 완패가 아프리카 축구에 대한 자신감이 아닌 두려움으로 작용한 것 같았다. 경기운영을 지나치게 조심스럽게 하려다 플레이는 오히려 경직되고 투박해졌다. 덕분에 상대는 빠르게 자신감을 충전했다. 알제리는 더욱 공격적으로 나왔고 한국은 당황한 채 전반을 마쳤다. 예방주사가 됐어야 할 평가전이 오히려 가나전 대패로 선수들의 자신감을 앗아간 결과로 나타났다. 월드컵직전의 평가전 상대로는 잘못 고른 셈이다.

 

그래서 벨기에와의 경기에 앞서 중요한 건, 세트피스 등 골결정력을 높이는 기술적인 측면보단 알제리전 패배 충격이 부른 정신적인 측면이다. 즉 한국대표팀의 떨어진 자신감을 회복하는 게 우선이다. 그렇다면 16강 진출을 확정지은 H조 최강 벨기에를 상대로 홍명보호는 어디에서부터 자신감을 찾아야 할까. 자신감을 구하는 루트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것, 바로 한국축구에서 찾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현재 한국대표팀이 국민들에게 가장 비난 받는 부분은 홍명보감독의 선수기용이다. 대표적으로 원톱 박주영과 골키퍼 정성룡을 선발로 투입하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다. 평가전부터 부진을 거듭했던 그들은 이길 수 있었던 러시아전 무승부, 이겨야만 했던 알제리전 패배의 원흉으로 지목된다. 하지만 승패를 떠나 선수기용은 감독 고유의 권한이다. 또한 홍명보 감독의 선수기용이 결과적으로 실패로 이어졌으나, 다른 선수가 그들을 대체한다고 해서 경기결과가 달라졌을지도 알 수 없다. 축구는 11명이 한팀으로 움직이는 경기이기 때문에 더욱.

 

다만 한 팀으로써 홍명보호는 분명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표적으로 한국축구의 아이콘 투지, 투혼이 실종됐다. 이것이 알제리전 패배이상으로 축구팬들을 실망시켰다. 대표팀의 막내 손흥민선수, 교체투입된 김신욱-이근호 선수 정도만이 그나마 투혼을 불살랐다는 견해가 주를 이룬다. 즉 져도 좋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질 때 지더라도 한국축구 특유의 근성, 투지만은 보여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오버랩되는 게 바로 1998년 프랑스월드컵 조별예선 마지막 벨기에와의 경기다.

 

한국의 이번 브라질월드컵은 지난 98년 프랑스월드컵을 연상시킨다. 그 때 당시 감독이 차범근이었다. 멕시코-네덜란드-벨기에와 한조에 편성됐었고, 16강 진출을 위해 멕시코는 반드시 잡아야 할 상대로 지목됐다. 시작은 좋았다. 전반전 하석주의 골. 그러나 곧바로 하석주의 퇴장. 결국 차범근호는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한 채 1차전 멕시코에게 1:3의 역전패를 당했다.

 

 

 

 

당시 선수기용을 놓고 차범근 감독을 비난하는 언론과 여론이 득세했었다. 왜 멕시코전에 최용수를 선발로 쓰지 않았냐는 것. 사실 차범근 감독은 후반전에 스트라이커 최용수를 투입해 승부를 보려했지만, 예상 못한 하석주의 퇴장으로 수비와 미드필더를 강화하는 데 교체카드 세장을 다 써버렸고, 정작 최용수카드는 꺼내보지도 못하고 패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알제리전에 김신욱대신 박주영을 선발로 기용하고 실패해 비난받는 홍명보 감독의 처지와 유사했다.

 

멕시코전 패배로 차범근 감독의 입지는 크게 줄어들었고 최용수는 네덜란드전에 선발출전했다. 그러나 결과는 히딩크의 어퍼컷 세리모니가 빛나는 0:5의 충격적 대패로 돌아왔다. 거기서 한국의 16강 진출도 무산됐다. 한국은 월드컵도중 차범근 감독이 경질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감독도, 선수들도, 국민들도 멘붕에 빠졌다. 기권할 수 있다면, 차라리 남은 벨기에전은 기권하는 게 나았을 정도로 한국대표팀은 망가졌었고 국민들은 등을 돌렸다.

 

그리고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벨기에와의 마지막 조별예선 경기. 우린 16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벨기에는 우릴 이기면 16강도 가능했다. 분위기도, 경기력도 우리보다 좋았고, 무엇보다 16강, 승리에 절실함에서 벨기에가 우릴 앞섰다. 아무리 세대교체에 실패했다고 하나 벨기에는 벨기에다. 그런데 막상 경기가 펼쳐지자 예상은 빗나갔다. 시종일관 서로 치고 받으며 막상막하의 흐름으로 명승부를 펼친 끝에 1:1 무승부로 끝났다. 포기하지 않는 선수들의 투지, 유상철의 동점골, 이임생의 붕대투혼에서 한국축구의 희망을 봤었다.

 

 

 

 

네덜란드에 0:5로 대패해 감독이 경질되는 등 멘붕에 빠졌던 한국축구가 16강 진출을 위해 승리가 절실했던 벨기에를 상대로 무승부를 거둘 거란 예상은 아무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98프랑스월드컵 벨기에전 무승부는 특별하다. 투혼이 뭔지 보여줬다. 한국축구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선수들의 마음가짐에 따라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 27일 벨기에전을 앞두고 홍명보호가 기억해야 할 경기가 바로 16년 전, 1998년 프랑스월드컵 벨기에전이다.

 

98년 당시 선수로 뛰었던 홍명보와 빌모츠가 지금은 대표팀을 이끄는 수장으로 만났다. 현재 홍명보감독은 차범근감독처럼 여론의 비난을 면치 못하는 실정이고, 팀을 16강에 올려놓은 빌모츠감독은 여유가 넘친다. 한국과 경기를 앞두고 빌모츠는 선수들에게 골프 및 자원봉사 등에 참여할 시간도 주고, 한국전엔 2명 이상의 주전에게 휴식을 줄 계획도 밝혔다.

 

현재 벨기에대표팀은 느슨할 대로 느슨해졌다. 그만큼 여유가 있다는 얘기도, 방심하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그렇다면 홍명보호엔 호재다. 한국은 알제리전 완패로 국민들에게 너무 큰 실망감을 준 터라, 경우의 수, 16강 진출여부를 떠나 벨기에전에서 최선을 다할, 사즉생의 각오로 뛰어야 할 이유가 있다. 멘탈부분에서 오히려 벨기에보다 강할 수 있다. 무엇보다 빌모츠감독의 주전 교체의사는 안 그래도 조직력에 문제점을 드러낸 벨기에의 빈틈 확장을 예고한다.

 

한국은 벨기에를 상대로 월드컵 전적 1무1패로 열세다. 그러나 아프리카국가를 상대로 1승1무였다가 알제리에게 1패를 당했던 것처럼, 반대로 벨기에에게 1승을 거둘 기회일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게 있다. 우리 플레이를 하는 것이다. 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멕시코와 네덜란드를 상대로 고전했던 건 우리 스스로 주눅이 들었기 때문이다. 소극적이었다. 반면 벨기에전에선 죽기살기로 뛰었다. 이미 16강 진출이 무산됐음에도 마치 월드컵 결승전인양 뛰었다. 그러다보니 승리가 절실했던 벨기에와 좋은 승부를 할 수 있었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러시아와 비겼다. 사실 이겼어야 했던 경기다. 그러나 무승부에 만족하듯 소극적이었다. 그런데 러시아도 소극적으로 임해 무승부가 났다. 반면 알제리는 적극적으로 임했다. 러시아전처럼 소극적으로 시작한 우린 당황했다. 결국 전반전에만 세골을 내줬다. 경기 후 손흥민은 눈물의 인터뷰를 통해 정신 바짝 차려서 전반부터 경기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벨기에전 공략법은 나왔다. 후회의 눈물을 흘린 손흥민의 인터뷰안에 있다. 알제리가 우릴 당황하게 했던 것처럼, 우리가 벨기에를 당황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전 경기와는 다른 패턴을 보여야 한다. 보다 적극적으로 경기를 뛰어야 한다. 상대의 경기력에 움츠려들지 말고 한국의 강점을 살리는 축구를 펼쳐야 한다. 자력 진출이 물건너간 이상 16강은 잊고 부담없이 뛰는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대한민국의 월드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국민들이 벨기에전에서 바라는 건, 복잡한 경우의 수를 따져가며 16강에 진출하는 기적만은 아닐 것이다. 그보단 실종된 한국축구의 투혼을 보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아쉬움이 남지 않는 경기. 응답하라 1998이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벨기에를 상대로 보였던 열정. 인생경기라 할만큼 붕대투혼을 불사르던 이임생선수같은 마음가짐이 홍명보호에서도 나타나길 기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