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및 드라마

남자가 사랑할 때 송승헌vs연우진, 누가 더 무서운 남자일까

바람을가르다 2013. 4. 27. 08:34

 

 

 

 

수목드라마 ‘남자가 사랑할 때’ 8회 마지막에 벚꽃 구경을 하며 데이트를 즐기던 한태상(송승헌)이 서미도(신세경)에게 매일 너와 이렇게 함께 하고 싶다면서, “나 좋은 남편이 될 것 같지 않니?”라며 변화구성 프로포즈를 던졌다. 한태상이 많이 급하긴 급한 모양이다. 본격적으로 연인관계를 맺은 지 얼마 안 된 상황에, 커플링과 데이트 몇 번에 또 다시 결혼을 얘기하니 말이다. 서미도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농담으로 몰아갈까. 아니면 못이기는 척 받아줄까. 그들의 벚꽃엔딩은 9회로 미뤄졌다.

 

이번 주 방송된 ‘남자가 사랑할 때’ 7회와 8회는 한태상과 서미도의 러브러브 진도를 빼는 데 주력했다. 그만큼 그들의 데이트 분량이 많았다. 장르가 치정멜로가 아닌 로맨틱코미디로 느껴질 정도로. 대신 반대편에 선 이재희(연우진)란 남자를 통해 치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8회 내내 서미도가 이재희에게 무슨 안 좋은 일 있냐며 물었듯, 이재희는 눈빛부터가 이미 치정스럽게(?) 변해버렸다.

 

 

 

 

이재희는 한태상과 서미도의 키스를 목격했다. 서미도가 말한 애인이 한태상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서미도에게 말로만 듣던 애인의 실체가 아주 가까이 있는, 자신과도 친분이 매우 두터운 한태상사장이란 사실을. 동시에 한태상이 늘 말했던 비밀의 여자친구가 서미도란 사실까지. 이재희는 무척이나 당혹스러워 했다.

 

서미도가 남자친구가 있다면서, 이재희의 구애를 거절했을 때는 볼 수 없었던 당혹스러움이다. 그런데 그 남자친구가 한태상이란 사실이 이재희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다크하게 만든다. 왜 일까. ‘남사’의 이재희라면 오히려 한태상과 서미도의 관계를 누구보다 축복해줘야 할 사람이 아닌가.

 

 

 

 

한태상은 가난한 자신에게 유학비용을 대주고 MBA과정을 밟도록 도와준 사람이다. 그래서 한태상이 한사코 거절했음에도, 이재희는 그의 회사에 본부장으로 들어간 것이다. 회사를 키우는데 일조해서, 한태상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고 싶었다. 그에게 한태상은 보은의 대상이다. 게다가 자신의 형 이창희(김성오)와 한태상은 친형제처럼 의지하는 막역한 사이가 아니던가.

 

서미도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이재희가 한태상에게서 서미도를 뺏으려 행동하는 건,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상처 입힐 각오를 하고 시작하는 게 된다. 자신을 도와줬던 후원인 한태상에게 뒤통수를 치는 일이며, 형 이창희와 한태상의 관계를 아주 애매하게 만든다. 쉽게 말해 사랑만큼 우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남자들 세계에선 금기시 되는 행위를, 무섭고  위험한 선택을 하는 셈이다.

 

 

 

 

이재희의 위험한 선택은 사실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다. 사랑이란 본질이 옳고 그름에서 벗어난 것처럼. 즉 이재희가 서미도에게 접근하고 사랑을 얘기하는 건, 죄가 아니다. 본인의 감정에 충실한 것이다. 비겁한 게 아니라 솔직한 것이다. 우정의 허울보단 사랑의 실속을 찾겠다는 게 나쁜 것인가. 내가 서미도를 사랑하고 서미도가 나를 사랑하면, 그것만큼 중요한 것, 명쾌한 해답도 없다.

 

만약 드라마 ‘남자가 사랑할때’의 관계도를 단순화시켜 현실로 옮긴다면 어떨까. 이재희와 서미도가 사랑한다는 이유로, 한태상을 배신한다면? 아마도 이재희와 서미도는 주변사람들에게 입에 담긴 힘든 욕을 먹는 것도 모자라, 머리채를 잡히거나 몇 대 얻어터질 수도 있다. 동시에 회사에서 쫓겨나거나 스스로 사표를 던지겠지만, 그들이 사랑하며 살아가는 데엔 큰 문제가 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남자가 사랑할때’는 드라마다. 욕 좀 먹고 끝나면 드라마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래서 배신당하게 될 한태상이 그들을 욕만 할 수 없게, 아름답게 포장된 사랑이란 감정의 밑바닥을 보여주고, 치정의 끝을 보여줄 수 있는 설정이 가미된다.

 

일단 주인공 한태상은 성공한 사업가이전에 손에 피를 묻히고 살았던 조폭출신이다. ‘배신’이란 단어에 상당히 민감한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서미도가 첫사랑이다. 마흔 살 무렵에 사랑이란 감정에 휩쓸렸고, 치명적일 정도로 깊은 사랑에 빠졌다. 그래서 더욱 서미도에게 집착하는지도 모른다.

 

 

 

 

한태상을 보며 서미도는 그가 정신연령이 어리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대하는 그의 표현이나 행동이, 마치 열일곱살 사춘기에 멈춘 것 같다며 여러차례 지적한다. 서미도가 느끼는 남자 한태상은 열일곱살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만큼 그가 순수해 보인다는 얘기도 되지만, 사실 열일곱살은 마냥 순수하지 않다. 열일곱살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무서운 나이다. 이성보단 감성이 앞서기 쉽다. 상처를 입으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는 질풍노도의 시기다.

 

예를 들어, 영화 <건축학개론> 이제훈이 첫사랑 수지와 선배 유연석의 관계를 오해(?)하고, “꺼져 줄래?” 한마디로 첫사랑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던 건, 그의 캐릭터가 보편성을 띤 스무살의 대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이성적인 판단이 어느 정도의 감정을 억누를 수 있는. 배신감을 느꼈다고 해서, 제 2의 불안하고 불편한 행동을 무턱대고 저지르지 않는.

 

 

 

한태상이 만일 이제훈과 비슷한 배신감을 느낀다면 어떻게 행동할까.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라고 생각한 서미도에 대한 집착을, “꺼져 줄래?” 정도로 놓아 버릴 수 있을까. 그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열일곱살의 감성과 상처를 품고 있다. 매우 공격적인 조폭의 근성도 남아있다. 한태상에게 배신이란 감정은, 불편함이상으로 위험한 사건을, 파국을 끌어낼 수 있다.

 

수목드라마 ‘남자가 사랑할때’는 인생의 한 순간 뜨거운 열풍에 휩싸인 주인공들의 사랑을 그린 치정 멜로드라마다. ‘사랑은 인간을 어디까지 꽃피웠다가, 어디까지 시들게 할 수 있을까?’라는 화두를 던졌다. 즉 사랑의 본질을 말하고자, 사랑의 보여줄 수 있는 두 얼굴, 양극단을 쫓고 있는 셈이다.

 

 

 

 

남자는 사랑때문에 어떤 짓까지 할 수 있을까. 그 얘기로 풀어내고자, ‘남사’ 주인공 한태상의 직업은 어둡고 위험한 조폭이란 밑바닥에서부터 사랑하는 여자에게 물질적인 모든 걸 해줄 수 있는 성공한 사업가의 밝고 높은 자리까지 커버한다. 잃어버린 가족에 대한 불행과 아픔, 외로움은 사랑에 대해 강하게 집착하는 또 다른 얼굴로. 나이 마흔의 이성적인 사고는 열일곱의 충동적인 감성이 지배할 수 있도록. 그렇게 상황에 따라 자유자재로 극과 극을 오갈 수 있는 설정을 한태상이란 남자안에 응축시켜 놓았다. 그 남자가 사랑하는 어떤 방식에도 개연성을 부여하게끔.

 

사랑이란 이름으로 한태상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서미도와 이재희의 성격, 성장한 배경에 비춰볼 때, 그들이 선택하고 움직이며 넘나들 수 있는 행동의 범위가 제한적일 수 있는 반면, 굴곡이 심한 인생을 달려온 야생마 한태상에게 제한구역이란 없어 보인다. 단지 남자 한태상을 폭주하게 만들기도, 멈추고 달랠 수 있는 것도 여자 서미도라는 사실만 예감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