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프린스, 문제는 강호동이 아닌 제작진?
착한 예능, 북토크쇼 강호동의 ‘달빛프린스’가 22일 첫방송됐다. 게스트로 배우 이서진이 초대됐고, 그가 소개한 책은 황석영의 소설 ‘개밥바라기별’이었다. 해당 책과 관련, 시청자가 문제를 제시하면 게스트 이서진과 패널 탁재훈-용감한형제-정재형-최강창민이 문제를 푸는 방식을 도입했고, 결과에 따라 게스트가 기부할 상금 혹은 벌칙이 주어졌다. 물론 토크쇼답게 중간중간 게스트 이서진을 중심으로 출연진들의 사적인 이야기들이 오갔다.
‘달빛프린스’의 1회만 놓고 보면 매우 실망스럽다. 식상한 구성과 전개. 별다른 게 없는데 뭐가 파격이고 차별화인가? 예능이 재미가 없는데 뭐가 착한예능인가? 토크쇼 ‘달빛프린스’가 1시간 동안 보여준 건, 시청자를 사로잡을 준비가 안 된 프로그램이며, 강호동을 비롯한 MC진에 앞서, 방향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 제작진의 한계를 명확하게 드러낸 것뿐이었다.
뼈대가 불분명하다. 게스트가 중심인가. 책이 중심인가. 시청자가 중심인가. 일단 게스트가 책을 선정하는 것부터 신중할 필요가 있다. ‘달빛프린스’가 원하는 방향에서 토크쇼를 주도하려면, 책선정은 제작진이 하는 게 오히려 낫다. 게스트가 책 선정을 놓고 시청자를 감안한 고민이나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어진다. 그 시간에 책을 읽고 오면 되니까. 그건 강호동을 비롯한 달빛프린스 MC진들도 마찬가지다.
제작진은 프로그램의 방향성을 가장 잘 인지하고 있다. 어떤 토크쇼를 할 것인가. 어떤 에피소드를 끌어낼 것인가. 책을 팔기 위해 존재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일단 출연진이 할 얘기가 많은 책. 시청자가 내용을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책에서 시작해야 한다. 접근이 쉬운 책, 읽진 않았어도 대강의 줄거리는 파악한다거나, 제목이 귀에 익어 흥미를 자아내는 책, 해당 책과 관련된 이야기만으로도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는 책.
달빛프린스 1회다. 시청자를 강한 인상을 남기는 1회다.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이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론 다소 무겁다. 읽지 않은 시청자는 낯설음에서 오는 거부감이 앞선다. 그런데 중간에 퀴즈는 문맥을 끼워 맞추는 등의 조잡함으로 지루함을 배가시킨다. 출연진들의 토크가 사적인 얘기로 돌아야, 그나마 시청자가 반응한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 이런 저런 구절을 인용하며 공감대를 찾아보지만, 한번 집중력이 떨어지면 이미 책에서는 멀어진다. 사족이 된 황석영의 5분 출연은 책을 세일즈하는 프로그램이란 인상만 남긴다.
그래서 책선정이 중요한 것이다. 평소 독서를 거리가 먼 이들도 눈이 번쩍하고 귀가 솔깃해지는 책. 전혀 어렵고 거창할 필요가 없다. 소설 ‘해를 품은 달’이나 ‘레미제라블’ 등과 같이 영화나 TV드라마로 각색되어 화제를 낳았거나, 유통경로가 다양해 시청자의 접근성이 용이하고 친숙하여 공감도를 쉽게 높일 수 있는 소설. 예상을 깬 ‘슬램덩크’나 ‘미생’같은 만화책은 어떨까.
예를 들어, ‘슬램덩크’를 가지고 토크를 한다고 하자. 유명하다. 대중적이다. 재밌다. 향수가 있다. 여운을 남긴다. 그 뒷이야기가 쓰여졌다면? 이야기의 상상력을 부른다. 해당작가의 다른 책은? 스포츠와 관련된 다른 책은? 굳이 책을 설명하려 들지 않아도, 책에 등장한 에피소드를 가지고 할 얘기가 많아지는 것이다. 샐러리맨 이야기를 다룬 최근 화제작 ‘미생’도 마찬가지다.
IT의 제왕 스티브잡스의 일대기를 다룬 ‘스티브잡스’를 두고 토크를 한다. 책을 읽어야 스티브잡스에 대해 알 수 있고,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가. 아니다. 아이폰을 비롯해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기계들을 통해서도 스티브잡스를 읽을 수 있고 이야기할 수 있다. 우리가 잡스에 대해 잘 몰랐던 사실들은 책을 통해 얘기하며 정보를 나눌 수 있다. 상대적으로 공감과 흥미를 부르기 쉽고 토크 확장성을 높인다.
‘달빛프린스’가 게스트를 띄운다거나, 책을 세일즈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가급적 시청자와 공유할 부분이 많은 책이 좋다. 소통이 쉽고 가벼워야 한다. 소재인 책이 출연진과 시청자의 충분한 공감대에 놓여야, 진행과정에서 자칫 삼천포로 빠지더라도 금세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 재미가 있는 책은, 읽다가 중간에 접어도, 다시 책을 잡을 때 흐름이 이어지는 것처럼.
제작진은 출연진에게 수능 언어영역 시험이라도 보게 할 작정인가. 시청자의 지루함은 어쩔 것인가. 책의 기승전결을 쫓되, 머리 싸매고 공부하듯이 고리타분하게 접근할수록 매력을 잃는다. 출연진이 멘트를 하나 날리더라도 유머를 담을 여유는, 책이 주는 불필요한 부담감을 해소하고 줄일 때 상승한다. 출연진을 감안하면, 책이 정해지는 순간부터 토크의 질이 결정된다.
물론 정답은 아니다. 다만 강호동-탁재훈 등 출연진들이 북토크를 통해 어느정도 내공이 쌓이고 프로그램이 궤도에 오르기 전까진, 책내용의 핵심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시청자의 흥미와 공감을 손쉽게 끌어내는 책 그리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독서유무를 떠나 출연진과 시청자가 최소한 선정된 책에 대해 스스럼없이 얘기할 수 있는. 토크쇼 달빛프린스의 강점이자 차별화전략은, 교양 아닌 ‘예능’에서의 접근을 용이하게 조성할 때 가능하다.
과정에 예능의 소스를 담는 것도, 시청자가 공감을 못하면 그건 파격도 변화도 아니다. 재미의 포인트를 책에서 찾을 것인가. 출연진의 캐릭터에서 찾을 것인가. 출연진 개개인의 강점이 소재인 책을 통해 어필될 수 있도록 제작진의 치밀한 구성과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그럴 능력이 없다면, 패널 수를 줄이고, 관련 책을 잘 알고 적재적소에 해설해줄 전문가를 앉히는 게 낫다. ‘달빛프린스’는 이제 시작인만큼, 제작진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제작진의 고민 흔적, 더 나아진 모습을 기대한다.